가난한 사람의 불안은 이해하기 쉽다. 이번 달 카드값이 통장 잔액보다 많거나 갑자기 직장을 잃었는데 저축액이 별로 없다면 불안한게 정상이다. 이때의 불안은 돈이 생기면 해결된다. 비상금이 생기고 빚이 줄어들면 실제로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진다.
하지만 돈이 정말 없는 사람만 불안한 게 아니다. 순자산이 10억원, 20억원을 넘겨도 항상 불안한 사람도 있다. 당장 소득이 끊겨도 몇 년은 생활할 수 있는데 여전히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을 더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지금 가진 돈을 잃을까 봐 이유없이 항상 불안하고 두려운 사람도 많다.
돈은 늘었는데 마음은 왜 그만큼 편안하지 않을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비교 대상이 자산과 함께 올라간다
사회초년생 때는 옆자리 동료의 연봉이 기준이다. 월급이 오르고 자산이 붙으면 비교 대상도 조용히 바뀐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누가 로열층을 샀는지, 누구는 강남에 집을 한 채 더 갖고 있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교를 전혀 하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문제는 비교의 기준이 올라가는 속도가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값이 지역별 편차를 두고 급등한 서울이라는 환경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10년 전에는 10억원만 있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10억원을 모으고 나니 주변에 20억원을 가진 사람들이 보인다. 20억원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30억원, 50억원을 가진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과거의 내가 바라던 숫자에 도착했는데도 부자가 됐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숫자를 재는 기준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로 시작된 불안에는 끝이 없다.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있고, 부자가 될수록 더 부유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2. 소비할 때 즐거움보다 잔액 감소가 먼저 보인다
여행지에서 가족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고 해보자. 식사를 마치고 영수증을 받는 순간 “오늘 참 좋았다”보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즐거움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을 하고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에게 돈은 삶을 넓히는 도구가 아니라, 절대로 줄어들면 안 되는 숫자에 가깝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는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된다. 작은 지출을 아끼고 투자금을 늘리면서 자산을 빠르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충분한 돈을 모은 뒤에도 습관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젊을 때 사고 싶었던 물건도, 가고 싶었던 여행지도 계속 다음으로 미룬다. 돈은 충분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허락을 자기 자신에게 내리지 못한다.
통장 잔액은 늘어났는데 삶의 반경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3. 충분히 준비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비상금도 꽤 있다. 보험도 가입했다. 대출도 거의 갚았거나 없다. 주식시장이 크게 떨어져도 당장 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불안한 사람은 곧바로 다음 시나리오를 만든다.
경기 침체가 오면 어떡하지.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지. 주가와 집값이 동시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부모님 병원비와 자녀 교육비가 한꺼번에 필요해지면 어떡하지.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웬만한 충격을 견딜 만큼 준비했는데도 안심할 수 없다면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다. 미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능력은 자산 잔액과 반드시 함께 커지지는 않는다.
4. 안전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돈에 대한 불안이 큰 사람은 안전해지기 위해 모든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 원금 손실이 없어야 하고, 소득은 끊기지 않아야 하며 예상치 못한 지출도 생기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과도함 집착 때문에 인생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도전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동산도 떨어질 수 있고 주식시장도 폭락할 수 있다. 안정적인 직장도 사라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한 병과 사고가 생긴다.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미래의 모든 위험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까?”가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만든다.
위험을 없애려는 사람은 계속해서 돈과 대비책을 쌓는다. 반면 위험을 감당하려는 사람은 일정한 현금흐름을 만들되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멘탈로 무장한다.
전자는 안전해질 날을 기다린다. 후자는 완전히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불안의 총량이 돈과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산이 부족해서 생기는 불안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 불안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돈이 해결해준다.
다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돈과 불안의 관계가 달라진다. 더 많은 돈이 더 큰 안전을 주기는 하지만 마음속 불안까지 줄여주지는 않는다.
비교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소비를 자신에게 허락할 것인지, 얼마나 준비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것인지. 통장 잔고가 아닌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하나 마나 한 걱정’이란 말을 좋아한다. 불안이 엄습하는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행동을 취하고, 없다면 하나 마나 한 걱정을 즉시 멈추자. 돈이 많아져도 불안이 줄지 않는 이유는 통장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