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0월 1일 장중 5.34%까지 치솟아 2002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분기에만 약 90bp, 즉 0.9%포인트 뛰었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도 급등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거센 매도세에 휩싸이고 있다.
채권시장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미국 주식시장이 잘 버티고 있다. 3분기 브렌트유 가격이 약 40% 뛰고 채권 금리가 20여 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랐는데도 말이다. 3분기 S&P 500 지수는 +2%, 나스닥 지수는 +2.5%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의 계속된 상승으로 폭락장을 예상했던 투자자들은 당황하고 있다. 금리는 분명 주식시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AI 혁명’의 강한 힘이 미국 증시를 떠받치고 있다.
천문학적인 AI 투자 열풍 뒤, 커지는 부담
최근 국채 금리는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전망, 예상보다 강한 성장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재정 적자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가 계속해서 많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장기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최근 채권시장에는 새로운 변수가 하나 더 등장했다. 바로 AI 투자 붐이다.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냉각시설에 대한 투자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지면서 이제 회사채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가 지난 1년 동안 발행한 회사채는 약 2200억 달러에 달한다. AI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국채 금리를 밀어올린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정부가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AI 기업이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니 장기투자 자금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된 것이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골드만삭스 자료에 따르면 AI 관련 기업의 회사채 스프레드는 최근 약 115bp로,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 전체 평균 약 78bp보다 높다. 앞으로 AI 투자를 위해 얼마나 많은 회사채가 발행될지 알 수 없고 AI가 그만큼의 수익을 낼 지도 불확실하다. 그만큼 AI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부담해야 하는 금리가 높아지고 있다.
알파벳은 지난 8월 250억 달러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기존 자사 채권보다 약 10~15bp 높은 수익률을 제공해야 했다. 1000억 달러 넘는 주문이 몰릴 만큼 수요 자체는 강했지만 알파벳 10년물 채권은 미 국채보다 85bp 높은 금리로 발행됐다
이제 월가는 AI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AI 투자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그렇게 투자한 돈을 회수할 만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미국 10년물 국채에 투자해 연 5.3% 정도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기업은 투자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다. 즉 기업들의 실제 자금조달 비용은 연 6%를 훌쩍 넘길 수 있다.
최근 알파벳 주가를 둘러싼 논쟁도 이같은 시장의 의구심을 보여준다.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AI 투자가 높은 자본비용을 감당하고도 충분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제 중요한 것은 AI가 과연 막대한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돈을 벌 수 있는지다.
올해 2분기 알파벳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4%, 영업이익은 30% 증가했고 Google Cloud 매출은 무려 82% 늘었다. 그럼에도 AI 인프라 투자가 워낙 빠르게 증가하면서 분기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59억 달러로 돌아섰고 올해 자본지출 전망도 1950억~205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구글이 AI로 돈을 벌긴 하겠지만 AI로 돈을 벌기에 앞서 엄청난 돈을 써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인 것이다.
반대로 마이크론처럼 AI 투자 확대가 당장의 매출과 이익 증가로 연결되는 기업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크론 주가는 국채금리가 5%를 돌파하며 상승하는 구간에서도 강한 AI 메모리 수요와 실적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견조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시장은 이제 ‘AI’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기업을 수혜주로 묶지 않고 AI 투자로 이미 현금 흐름이 발생하는 기업과 미래 수익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이 차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5%대 금리에도 美 증시가 버티는 이유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와 미국 증시는 24년만에 최고치에 도달한 국채금리에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돌파하면 주식시장이 폭락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주가는 폭락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AI 투자 자체가 미국 경제와 기업 실적을 강하게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와 전력설비 주문 증가로 기업 설비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8월 핵심 자본재 주문은 전월보다 1.6%, 전년 동기보다 10.6% 늘었다. AI 투자 붐이 채권시장에서는 막대한 자금 수요를 만들어내지만 실물경제에서는 투자와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의 펀더멘탈인 미국 기업 이익이 여전히 강했다. 강한 체력을 보유한 미국 기업들은 높은 금리를 버티고 있다. AI와 미국 경기 호조는 다시 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진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S&P500의 2분기 이익은 전년비 50%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에는 알파벳과 아마존의 대규모 평가이익이 포함돼 숫자가 상당히 커졌지만, 이를 제외해도 이익 성장은 견조했다.
지금은 금리 상승이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끌어내리는 힘과 기업 이익 증가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황이다. 미국 기업 이익이 주가를 강하게 떠받치며 주식시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시장이 흥미로운 모순 속에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AI 성장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기업이익이 유지되고 주식시장이 버틴다. 하지만 바로 그 AI 성장을 위한 막대한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은 회사채 공급을 늘리고 이미 높은 국채금리와 맞물려 기업들의 자본비용을 높인다. AI라는 거대한 새로운 산업 혁명이 주식시장을 지탱하는 동시에 부담이 되는 아이러니다.
지수가 버티긴 하지만 모든 주식이 잘 버티는 건 아니다. 미국 증시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S&P500 종목의 약 40%는 연초대비 하락 중이다. 전체 종목 가운데 25%는 10% 이상 내렸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주가 상승이 소수 종목에 집중되는 현상은 2000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확실히 미 국채 10년물 금리 5.3%는 주식이라는 자산에 위협적인 숫자다. 국채에서 연 5% 넘는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주식에 투자할 것인가? 금리가 오를수록 성장주에 부담이 점점 더 커질 텐데 주식 비중을 줄이고 국채 투자 비중을 늘릴 것인가?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을 채권시장의 위기라 부르기엔 이르다. 월가는 이번 금리 급등이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지, 아니면 5% 안팎의 장기금리가 새로운 뉴노멀이 될지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 증시는 5%대 금리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더 강한 성장과 이익을 계속 증명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