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를 퇴사한 후에야, 언론의 자유가 생겼다

7c97fda6 c3e3 40b4 af91 2431e85ba923신문사를 퇴사하고 한동안 불안했다. 사이트를 구축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사회적 지위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상심하게 했다. 누군가를 만나 건네줄 명함이 사라졌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내가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텅 비어있는 온라인 페이지를 채우며 글을 썼다. 기사는 아니지만, 세상과 시장에 대한 내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안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사이트에 들어왔고,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글을 쓰게 됐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지금 알게 됐다.

언론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언론의 자유가 생겼다는 걸.

기자로 일할 때는 ‘내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쓸 수가 없었다. 순수하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가 없었다.

언론인인데…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이중, 삼중의 검열이 있었다. 첫째는 사주(신문사 오너), 둘째는 정치 권력, 셋째는 광고주(기업 자본)였다. 회사 전체적으로 편집국장을 비롯해 모든 편집국의 일원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회장(오너)의 의중이었다. 다음으로 살아있는 권력(현 정권)이었고, 그 다음이 돈을 많이 내는 기업(삼성전자, 현대차) 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슬픈 일은, 누가 뭐라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스스로를 검열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아서 기었다. 데스크들끼리, 기자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검열했다. 다른 부서의 광고주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데스크들끼리 고성이 오갔다. 오너나 광고주의 의중을 잘 헤아리면 잘했다고 서로 격려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기업형 미디어의 현실일 뿐이다. 언론은 기업이 됐고, 공룡처럼 커졌다. 기업이 된 언론은 많은 기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이익을 내야 한다. 그 언론에 주인까지 있었고 주인이 원하는 바가 따로 있기에 독립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니어일 때는 기사 쓰는 것이 마냥 재밌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것들이 눈에 너무 잘 들어왔다. 진짜 현실을 보는 빨간 약이라도 먹은 듯, 차라리 몰랐다면 좋을 것들이 눈에 너무나 잘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로서 이보다 더 자괴감 드는 일이…없었다.

어쨌든 기자라는 좋은 옷을 나는 벗어던졌고, 벌거벗은 자유를 얻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너무 좋은 옷이었다. 어딜 가나 대접 받고 전문성도 인정받고 젊은 나이에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주어졌다. 글 쓰고 돈도 받고…글쟁이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더 쓰고 싶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벗어야 할 옷인데 나는 내 피부에 이 옷이 늘러 붙기 전에 벗기로 했다. 늘러붙은 다음 벗으려면 살점이 뜯겨나갈 텐데…50대에 벗을 자신이 없었다.

퇴사의 자유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답 없는 무책임일지도 모른다. 맞다. 하루아침에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기로 스스로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저질러보기로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돈이 없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경제신문에서 일한 덕분에 남들 한다는 재테크는 조금씩 다 했다. 아파트를 구매했고, 개인연금도 부었고 수익은 별로 못 냈지만 주식도 꾸준히 사 모았다. 빚도 좀 있지만 크지 않다. 그것이 백수가 된 나를 구해주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됐다.

자유 타령하는데 결국 돈 있어서 그랬냐? 누군가는 조롱할지 모르지만 진짜로 돈이 심리적 버퍼가 됐다. 내가 만든 사이트 이름처럼 Life+Money가 된 셈이다. 물론 직업은 돈 이상 중요한 것이지만, 앞으로 한동안 사회적 지위가 없을 텐데, 경제적 독립이 나에게 자유를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LifeMoney 수익화도 조급하지 않다. 트래픽을 의식해 광고를 덕지덕지 붙이는 애드센스도 필요없다.

시장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의견도 마음껏 덧붙이고, 글과 문장의 형식도 다 파괴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못했던 일이다. 일부러 하려고 하지 않아도 기존의 기사 형식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창조를 위해 기존의 형식이 파괴된다.

자아가 없고 자유가 없었던 과거와 정말 다른 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언론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진짜로 언론의 자유를 얻었다.

아 그리고 정말 웃긴 건, 기사 쓸 때보다 내 글을 쓰는 지금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진짜로 ‘내 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자일 때 나는 사회적 직함은 있었지만 자유는 없었다.

지금은 이 작은 블로그 하나가 거대한 언론사보다 자유롭다는 사실을 느낀다.

LifeMoney는 디지털 세계의 내 집이다. 아주 작은 영토다. 이 구역에서는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무슨 글이든 쓸 수 있다.

이제는 글을 쓸 때 오직 독자만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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