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100만원 vs 20년 뒤 5억원’…부모의 선택은

Ff70f790 ad5f 4a4c 9040 31dfa8b516ac“아이 학원 보낼 돈으로 주식 사주세요. ”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수년 간 같은 내용의 강연을 반복했다. 인터뷰에서, 강연에서, 유튜브에서. 월 100만원의 사교육비를 20년간 연 7% 복리로 굴리면 5억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스무살이 된 자녀에게 사교육 대신 5억원의 돈을.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최근 존 리 전 대표의 주장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AI의 출현 때문이다. 향후 몇 년 이내에 AI가 다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 부모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집 풀고, 국어 문제 빈칸 채우고, 영어 단어 외우는 것. 부모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런 방식의 공부가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단순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평범한 아이들이 평범한 일자리도 갖기 어려울 것 같은데, 기계적인 사교육을 덜 하고 그 돈으로 주식에 적립해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교육은 수익률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 대신 돈을 물려주자는 주장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교육의 결과가 곧 돈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루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공부를 하는 큰 목적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서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내는 학습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즉 인내를 기르는 데 있다.

어떤 분야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는 반드시 반복과 축적의 시간을 요구한다. 타고난 재능조차 노력 없이는 꽃 피지 못한다. 수학이든 달리기든 농구든, 그림 그리기든 한 분야에서 재능이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의 피나는 노력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도, 피겨 여왕 김연아도, 월드클래스 축구 선수 손흥민도 재능을 타고났지만 오랜 기간 끝없는 노력으로 그 재능을 꽃 피운 사람들이다.

학교 수학 시험에서 100점 맞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걸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수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매달리는 ‘근성’은 한 아이가 인간으로 자라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자질이 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잘 하는 것이 서로 참 다르고 다양하다. 한 반에 스무 명의 아이가 있다면, 한두 명 정도는 그림을 잘 그리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서너 명 있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 2~3명, 노래를 잘 하는 아이 한 명, 종이 접기를 잘하는 아이, 큐브를 잘 맞추는 아이, 곤충에 몰입해서 이름을 줄줄 외우는 아이.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운동도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 잘 매달리는 아이, 야구, 탁구를 잘 하는 아이, 축구 또는 농구를 잘하는 아이 등등.

자신의 자녀가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일찍부터 투자를 통해 학교 교육 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 그것이 사교육비가 진정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놀랍게도 한 분야에서 계단식 성장을 이뤄낸 아이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인내심과 끈기를 발휘해 높은 성취를 나타낸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미국 대학 입시에서는 학과 성적 외에도 스포츠, 예술 분야의 성취도 함께 보는 것 같다.

공부를 통해 배우는 ‘근성’, 즉 그릿(Grit)은 열정과 끈기를 결합한 개념이다. 장기 목표를 위해 수년에 걸쳐 포기하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재능이나 지능보다도 ‘그릿’이 아이들의 성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그릿은 성취를 넘어, 살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위기를 돌파하는 힘이 된다.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자녀를 키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한국의 공교육, 특히 초등 공교육은 평준화가 핵심이다. 아이별로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은 사교육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그게 미술이든 무용이든 농구든 수학이든 부모의 별도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녀가 뾰족한 재능을 발굴하도록,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그릿을 기를 수 있게 지원해주자. 간혹 미술학원 보내면 화가 된다고 걱정하는 부모님들 있는데, 미술학원 간다고 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한 가지를 확실하게 잘 하는 아이는 큰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 자신감은 다른 영역에서도 무기가 된다.

존 리가 말하는 ‘주식 복리’보다, 그릿처럼 아이 내면에 쌓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장기 복리 수익률이다. 돈을 물려주지 않아도 아이가 인생을 스스로 헤쳐나가게 하는 힘을 물려주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이런 것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진정한 ‘금수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자질을 갖추게 된 아이의 수익률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존 리 대표가 우려한 무분별한 사교육비는 아이의 적성과 무관하게 대학 입시를 위해 쏟아붓는 돈을 말한다. 아이가 중2쯤 되면 대부분의 부모가 불안 때문에 아이를 국영수사과 학원에 보낸다. 부모는 단순히 자신의 불안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지, 재능을 믿고 키워주기 위해 보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대체할 수도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요즘 한국 사회는 이런 것들이 무시되고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이 갈수록 확산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산이 50억원, 100억원만 넘어가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명예도, 애정도, 관심도 그리고 누구나 공평하게 가지고 있지만 매 순간 흘려보내는 시간도 모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노력으로 이를 이겨내고, 헤쳐나가는 힘.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끈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성장기에 가져야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다.

그렇다면 존리 대표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오류가 보이지만, 그 말이 겨냥한 대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주장이 사교육을 100% 하지 말고 그 돈을 전부 주식에 적립하라는 뜻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리 대표는 “자녀 과외비를 쓰느라 (부모가)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그의 주장에는 사교육비가 과도해 부모의 노후 준비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면 안된다는 맥락이 있다.

한국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건 사실이고 그 상당 부분은 불안에서 비롯된 군중 추종형 소비다. “옆집 아이도 간다”는 이유로 보내는 수많은 학원은 정말 가야만 하는 곳인가? 아이들에게 숨 쉴 시간은 필요하지 않나? 정말 이게 맞나? 무한 경쟁에서 우리 아이는 살아남을 수 있나?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한 사교육은 뭔가? 정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 속에서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만 한다.

존 리 대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금융 문해력”이라는 말 아니었을까 싶다. 주식을 사서 돈을 물려주라는 말이 아니라, 노동 외에도 자본이 소득을 창출하는 ‘주식투자’라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노동 외에도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집 사교육비는 엄마가 불안해서 쓰는 것인가, 아이를 위한 확신에서 쓰는 것인가. 자녀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오직 아이를 잘 알고 있는 부모만이 결정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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