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200달러를 돌파하며 파죽지세로 오르던 마이크론 주가가 연일 하락세다. 메모리 운명 공동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동반 급락하면서, 한국 증시는 아수라장이 될 만큼 무너지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상반기 마이크론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기에 조정은 당연한 것인데 주가가 내릴 때마다 한국 증시에 미치는 파급력이 파괴적이다.
주가가 상승하는 구간에서 신규 진입한 투자자들의 고통은 말 할 것도 없으며, 레버리지 ETF로 진입한 투자자들은 2배 이상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메모리 주식 투자자들을 엄습하는 최대 공포는 바로 메모리 반도체 주식 랠리가 고점을 치고 끝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고점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식시장을 10년 넘게 들여다보며 시황을 썼던 내 생각과 지금 상황, 그리고 한국 증시를 요즘 좌지우지하는 마이크론을 둘러싼 제반 악재를 차분하게 점검해보고자 한다.
강세장에는 항상 ‘죽음의 계곡’이 있었다
시황을 쓰면서 2~3년 넘게 대세 상승하는 주식을 관찰했다. 예전의 아모레퍼시픽이나 에코프로비엠, 메리츠금융지주 등을 떠올려보면 1~2년 또는 그 이상의 대세 상승을 이어갔다. 그런데 장기 차트에서는 주가가 우상향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차트를 1~2달로 확대해서 보면 중간 중간에 급락 또는 폭락 구간이 있다.
나는 이걸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부른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지 못하면 장기투자가 주는 수익을 절대 먹지 못한다. 주가 상승이라는 산을 오르는 동안 만나는 이 ‘죽음의 계곡’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의 일부다. 며칠일지, 몇 년일지 모르는 채로 고통 받아야 한다. 언제까지 주가 하락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손실이 확대되거나 또는 수익이 사라지면서 버텨야 한다. 계곡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채로 고통 받는 상태에서 버티는 자는 오직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들 뿐이다.
작년부터 급등한 SK하이닉스를 봐도 작년 11월, 올해 4월에도 위기가 있었다. 주가는 하락했고 이제 상승세가 끝난다는 말이 나왔다.
개별 종목이 아닌 시장도 마찬가지다. 나스닥 지수나 S&P500도 역사적으로 우상향했지만 자주 깊은 조정이 나타났다. 어떤 하락은 2~3년간 이어졌다.
미국 증시를 봐도 역사상 최고의 장기 우상향 주식들이 요구한 계곡의 깊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마존은 닷컴 붕괴 때 94% 폭락했다. 이후에도 50% 하락이 자주 있었다. 애플도 70~80%씩 하락했다. 엔비디아가 2022년 66% 하락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후에 10배 올랐다. 마이크론도 메모리 사이클마다 반토막이 기본이었던 악명 높은 주식이다.
대세상승 주식의 전설적 수익률은 이 죽음의 계곡을 고통 속에 통과한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피터린치는 “조정을 준비하다가 잃은 돈이, 조정 자체로 잃은 돈보다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깊은 조정을 버티려면 주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안된다. 하루 하루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면 급락하는 주식에 놀라 매도 버튼을 누르게 된다. 장기투자하는 투자자라면 주식은 반드시 망원경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계곡은 계곡이 아니라 무덤이라는 사실이다. 닷컴 버블당시 시스코는 2000년 고점을 회복하는데 25년이 걸렸다. 죽음의 계곡의 이름이 괜히 ‘죽음’이겠는가.
따라서 투자자에게 필요한 일은 계곡을 견디는 인내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계곡인지 무덤인지를 판별하는 것.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버틸지 매도할지를 어렵지만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본인이 해당 기업에 투자할 때 가졌던 투자 논리가 아직도 유효한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 판단에 기초한 믿음만이 죽음의 계곡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마이크론 주가를 끌어내린 4가지 악재
마이크론을 끌어내린 악재를 섬세하게 보면 크게 네 가지다. 일차적으로는 상반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두 번째는 미국에서 제기된 D램 가격담합 집단소송, 세번째는 SK하이닉스의 나스닥 ADR 상장, 마지막으로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구매 추진이다. 하나씩 검토해보자.
첫번째 차익실현은 사실 악재라기보단 피할 수 없는 중력에 가깝다. 한 분기에만 240% 오른 주식이 조정 없이 계속 갈 수는 없어서다. 1200달러까지 올랐던 마이크론이 20~30% 조정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200달러 기준 20% 하락한다면 960달러, 30% 하락한다면 840달러까지 밀릴 수도 있다.
두번째로 담합 소송 리스크를 보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같은 굴지의 메모리 기업이 담합을 한다고? 어이가 없겠지만 실제로 이들 3사는 2000년대 초반 가격담합으로 삼성전자가 3억 달러의 벌금을 낸 전례가 있다. ‘메모리 카르텔’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 것이다.
요즘 담합 소송의 논리는 2002년과 같은 밀실 회동이 아니다. 실적 발표 당시 컨퍼런스콜에서 서로 ‘공급 조절’이나 ‘투자 절제’를 공개적으로 외친 사실을 ‘암묵적 담합’으로 엮는 방식이다.
지난 2년간 메모리 3사는 실적 발표 때마다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시황이 좋아도 무리하게 증설하지 않겠다, 수익성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덕분에 실적과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투자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근데 이런 메시지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암묵적 담합’의 정황이 돼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암묵적 담합’은 입증이 쉽지 않고 증거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호남 지역에 대규모 메모리 설비투자 계획을 내놨다. 또 통상 소송 이슈는 주가에는 단기 영향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세번째로 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 이 이슈는 메모리 업종의 악재가 아니라 마이크론의 악재다. 즉 마이크론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SK하이닉스 ADR이 나스닥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이 마이크론을 팔고 하이닉스를 살 거란 논리다. 하이닉스는 마이크론보다 저평가된 주식이다. 하지만 이번 상장으로 풀리는 신주는 발행주식의 2.5% 수준이며 미국 증시에는 유동성이 넘친다. 마이크론을 팔고 하이닉스를 사야할 정도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자금 사정이 타이트하지 않다고 본다.
고민해봐야 하는 진짜 문제는 네번째 악재다. 애플이 저렴한 중국 메모리를 구매하길 원한다는 점이다.

메모리 시장의 빌런, 애플의 등장
마이크론 주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만한 가장 큰 악재라면 이 뉴스를 꼽을 수 있겠다. 지난 6월말 파이낸셜 타임즈는 애플이 CXMT(창신메모리)로부터 메모리 칩을 구매할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하이닉스 메모리 3인방의 주가가 기록적인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뼈대는 “공급 부족이 2~3년간 이어진다”는 논리다. 그런데 메모리 가격이 오르자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구매 승인을 위한 로비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산 D램이 서방 공급망에 진입하면 지금의 공급 부족과 가격 강세가 무너진다.
창신메모리는 현재 미국 국방부 블랙리스트(국방부 1260H 리스트, 중국 군사기업 목록)에 올라있다. 당장의 악재는 아닌 것이 의회가 ‘중국군 연계 기업과의 거래’라며 크게 반대하고 나섰다. 애플은 2022년에도 중국 YMTC 칩을 쓰려다 같은 압박에 접은 전례가 있다. 논의되는 물량도 중국 내수용 애플 기기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과거 애플은 메모리 시장의 ‘갑 중의 갑’이면서 빌런이었다는 사실이다. 메모리 침체기, 메모리 가격이 바닥을 쳤을 때 애플은 메모리 업체들에게 공장만 겨우 돌릴 수 있는 후려친 가격에 장기 계약을 요구했다. 당장 공장은 유지해야 했기에 메모리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애플과의 계약을 받아들였고, 투자를 단행할 만큼의 마진을 남기지 못했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가격의 바닥을 더 깊게 파버린 것이다. 그 때의 설비투자 부족이 지금의 메모리 공급 부족을 초래했고, 애플은 과거의 업보를 비싼 메모리 가격이라는 부메랑으로 맞은 것이다.
마이크론이 지난달 3분기 실적과 8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발표하자 애플은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팀 쿡이 “40년간 경험해본 적 없는 급등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6월 30일 CNBC ‘매드머니’에 직접 나와 작정하고 말했다. 그는 “일부 고객들이 업계 가격을 지나치게 끌어내렸다. 2023년 메모리 가격은 이전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고, 기업들이 손실을 보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생산 능력에 투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수밋 사다나 마이크론 CBO도 침체기에 일부 고객사가 바닥 가격을 요구했고 그 결과 설비투자가 위축됐던 사실을 두고 “이는 건설적이지 않은 방식이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받아쳤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애플이 가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며 중국산 D램 도입을 추진하자 사실상 애플을 저격한 것이다.
지금은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 수요의 몸통이 되면서 메모리 고객의 왕좌는 구글, 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에게 넘어갔다. 클라우드 업체들이 수백억 달러 선급금을 내며 물량을 선점하는 시장에서, 애플은 이제 줄을 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자 가격을 올리며 중국산 메모리를 사겠다고 정부에 로비를 시작한 것이다.
단 창신메모리의 기술 격차는 아직 2~3년 뒤쳐져 있다. 범용 D램은 삼전닉스와 경쟁할 만 하지만 AI 혁명의 주역 HBM 기술력에서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HBM에 관해서라면 해자는 아직 강력하다.
이번 하락은 계곡인가, 메모리의 무덤인가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칩 구매 로비는 한편으론 메모리 강세론의 방증이다. 막강했던 메모리 구매자가 중국 업체한테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진짜 우려의 시작이다. 가격이 너무 오르자 수요자가 다른 공급처를 찾아내는 것. 즉 대체재의 등장이다. 애플의 로비는 그 시작이다. 애플이라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3사의 과점을 뚫어내려는 시도가 성공하면 다른 업체들도 저렴한 중국산 메모리를 구매하려 할 것이다. 공급 부족이 깨지면 메모리 주가도 무너지게 된다.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구매에 진짜로 성공할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돌아가서 마이크론 주가 하락을 유발한 악재 중 2가지(담합 소송,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구매 로비)는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다고 보인다.
바로 메모리 가격이 너무 올라 발생한 일이라는 점이다. 가격이 충분히 오르면 발생하는 일, 즉 구매자가 대체재를 찾고, 수요가 파괴되고, 공급이 늘어난다. 애플이 CXMT 메모리 구매를 원하고, 아이패드 가격을 올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설비투자를 발표한 것과 같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메모리 업황을 무너뜨릴 악재로 읽히고 있는 것이며 모두 비싼 가격이 소환한 현상이다.
그리고 구매자들이 가격을 깨기 위한 행동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애플이 창신메모리로부터 D램 구매에 실패하고, 메모리 3사의 가격 결정력과 기록적인 실적이 이어지면 주가는 반등할 수도 있다. 반대로 계곡이 무덤이 되는 조건은 중국산 메모리의 서방 진입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급망이다.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도입이 실제 승인되는지, 창신메모리의 기술력은 어떤지, 그리고 메모리 3사의 가격 결정력과 실적을 확인하며 투자 논리를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3가지 조건이 유지된다면 이번 하락도 또 한 번의 힘겹게 건너가는 ‘죽음의 계곡’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 균형이 무너지면 이번이 메모리 사이클의 진짜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버틴다’는 의지가 아니다. 투자 논리를 검증하는 태도다.
주가가 하루 5%, 10% 떨어졌다고 놀라서 팔 필요는 없다. 반대로 ‘좋은 회사니까 언젠가는 오른다’는 막연한 믿음 만으로 버틸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처음 투자했던 논리가 살아 있는지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이다.
이번 하락이 메모리 사이클의 계곡일지 무덤일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주가가 아닌, 논리를 보고 보유와 매도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투자를 하는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