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3월 30일, 런던 크리스티(Christie’s London) 경매장이 술렁였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반 고흐의 생일(3월 30일)이기도 했다. 크리스티가 의도적으로 날짜를 맞춘 것. 영국의 광산 재벌이던 체스터 비티 가문 소장 작품이자 전 세계에 6점 밖에 없는 고흐의 ‘해바라기’ 중 한 점이 경매에 올랐다.
작품 추정가는 1000만 파운드 안팎이었는데, 경매는 4분만에 끝났다. 전화 응찰자들의 경합이 불붙으며 2475만 파운드(약 3990만 달러)에 낙찰됐다. 직전 미술품 경매 최고 기록이던 만테냐의 ‘동방박사의 경배'(1040만 달러) 기록을 약 4배에 가깝게 갈아치우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낙찰자는 일본의 야스다 화재해상 보험(지금의 솜포 재팬)이었다. 당시 ‘그림 한 점에 4000만 달러’라는 숫자는 상식 밖의 가격으로 미술품 시장을 하루 아침에 뒤집어 놓았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화병 연작은 원래 7점이었다. 고흐는 1888년 8월 아를에서 해바라기 원본 4점을 그렸다. 이후 1889년 1월 원본 중 2점을 보고 반복 버전(répétition) 3점을 그려 해바라기 작품은 총 7점이 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꽃 3송이 버전은 개인 소장으로 공개되지 않는 상태고, 다른 한 점을 1920년대 일본 실업가 야마모토 고야타가 사들였지만 1945년 8월 미군의 공습으로 소실됐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해바라기는 총 6점이며, 개인 소장 1점을 제외하면 대중에게 공개된 작품은 5점이다. 소재지는 각각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독일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그리고 일본의 솜포 미술관이다.
각 작품은 전 세계에 흩어져 한 자리에서 볼 기회가 희박한데, 해바라기 연작 중에서도 가장 귀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이 바다 건너 미국 필라델피아에 왔다. 두 작품을 보기 위해 직접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다녀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해바라기의 가치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중 최고로 치는 작품은 런던과 뮌헨 소장본이다. 고흐가 1888년 8월 아를에서 그린 원본 4점 중에 스스로가 최고로 꼽고 서명까지 넣은 두 점이다.
특히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는 반 고흐가 폴 고갱의 방에 걸었던 바로 그 그림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꽃 그림을 고르라면 고흐의 내셔널 갤러리 해바라기가 아닐까.
4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된 런던의 해바라기는 어마어마한 빛을 품어내며 기품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거 런던에서 20대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진품의 아우라가 찬란하게 빛났다. 그리고 예전에는 왜 이 작품이 99% 노란색으로만 그려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클로드 모네가 빛의 거장이라면 고흐는 색의 마술사임에 틀림없다.
감상은 이 정도로 짧게 접어두고, 이 두 작품의 가치가 지금 어느 정도일지 추정해보자.
현존하는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살바토르 문디’다.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1만 달러(약 6300억원)에 낙찰되며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희소한 다빈치 작품이라는 상징성과 글로벌 대부호의 경쟁이 맞물리며 최고가를 새로 썼다.
미술품 경매 시장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최초의 작품’에 극단적인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살바토르 문디가 엄청난 가격에 낙찰된 이유도 미술품 경매에서 ‘세계적 인지도를 지닌 단 하나의 그림’에는 미술사적 평가와 무관하게 국부펀드급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해바라기 진본이 실제 경매에 올라오면 전세계 회화 사상 최고가 경신, 5억 달러 돌파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작품들이 경매에 나올 일은 없다. 내셔널 갤러리는 법적으로 소장품 매각이 금지돼 있고 필라델피아본도 유증 조건이 걸려 있어서다. 이 작품들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다행히 야스다 화재보험의 낙찰로 한국에서 가까운 일본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다. 도쿄 신주쿠 솜포 재팬 본사 빌딩 옆 솜포미술관에 있다. 신주쿠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기다림과 상실의 해바라기 그림
1888년 2월, 파리 생활에 지친 반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내려간다. 그는 그곳에서 화가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당시 고흐는 폴 고갱을 숭배에 가깝게 존경했는데, 동생 테오를 설득해 고갱에게 매달 생활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아를에 내려오게 한다. 고갱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예술적 공감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이를 수락했다.
여름 내내 고흐는 고갱을 맞을 준비에 들떠 있었다. 라마르틴 광장의 ‘노란 집’을 빌려 침대 두 개를 들이고 8월에 고갱의 방을 장식할 ‘해바라기 연작’에 착수한다. 당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마르세유 사람이 부야베스를 먹는 기세로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 화병 12개짜리 장식을 구상 중이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바라기는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태양이자 감사의 상징이었고 고흐에게는 우정에 바치는 헌화였다. 해바라기가 시들기 전에 그려야했기에 고흐는 일주일 만에 작품 4점을 그렸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 해바라기도 그 때 그린 것이다.
10월에 고갱이 도착했다. 고갱은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감탄했고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초상화가 문제가 됐다. 고흐는 그림 속 자신이 마치 ‘미친 사람’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사실 기질부터 예술관까지 정 반대였다고 한다. 고흐는 자연 앞에서 격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반면, 고갱은 기억과 상상으로 그림을 구성했다. 고흐는 매일 밤 토론을 벌이며 인정을 갈구했고 고갱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했다. 고갱은 12월 테오에게 “빈센트와 나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편지를 쓴다.
12월 23일 밤, 고갱이 떠나겠다는 뜻을 비치자 고흐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진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 그리고 고갱은 파리로 떠났다.
이듬해 1월, 병원에서 돌아온 고흐는 제일 먼저 해바라기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원본을 보고 다시 그려진 작품이 암스테르담과 필라델피아의 소장품들이다.
런던의 작품이 희망과 기대에 찬 해바라기라면, 필라델피아 작품은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 돌아온 고흐가 희망을 다시 붙잡으려 그린 꽃이다. 지금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친구를 기다리는 간절한 설렘과 친구를 잃은 상실감의 해바라기 두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정이 파국에 치달은 후 고갱은 고흐에게 편지로 해바라기 그림을 달라고 했다. 고흐는 거절했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해바라기는 나의 것’이라고.
아이와 함께 명화를 보기 위하여…
사실 세계적인 예술작품 앞에서 감상에 앞서 이 작품의 값어치를 따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는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미술관의 회화나 조각은 지루한 배경일 뿐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돈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반 고흐의 그림은 얼마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귀를 쫑긋 세운다.
“지금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무려 1조원 값어치의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는데 이걸 볼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라고 말해주면 기꺼이 보려고 한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반 고흐 그림에 깃든 슬픈 이야기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 접하게 해주려고 한다. 말하자면 문화적 자본을 조금이라도 물려주고자 하는 부모의 몸부림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미술관에 데려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나름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비싼 해바라기 그림 정도로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도 나이가 들고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거나, 소중한 사람과 헤어지는 시간을 겪게 된다면 기다림과 상실이 교차하는 두 해바라기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2026. 7. 30. 라이프머니[LifeMon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