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을 준다는데…삼성전자 주가는 왜 폭락했을까

삼성전자가 100조원을 넘나드는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자 시장은 실망했고 주가는 급락했다.

FCF(잉여현금흐름) 50%인 90조원~110조원은 객관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하지만 시장 기대치는 더 컸고, 기대했던 대규모 자사주 소각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100조원을 주주에게 준다는데 주가는 왜 주저앉았을까. 자사주 소각이 아니어도 배당은 지급될 텐데 투자자들은 왜 주식을 던졌을까. 뭐가 문제일까. 배당이냐 소각이냐를 넘어, 삼성전자는 과연 자본배분을 잘 하는 기업일까.


韓 주식시장 변화의 시험대에 선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기업이 되면서 한국 증시 변화를 보여주는 시험대에 올랐다. 그 시험대는 바로 주주들이 가장 중시하는 ‘자본배분의 시험대’다. 올해 200조원 넘는 잉여현금흐름이 발생할 텐데, 이걸 어떻게 쓸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시험받게 됐다.

이번 주주환원정책 발표가 그 첫 시험이었던 것 같다.

주주들이 기대했던 것은 FCF(잉여현금흐름) 50% 이상 환원, 자사주 소각이라는 두 가지 주주환원 방식이었다.

지난 8월19일 SK하이닉스는 ‘누적 FCF의 50% 이내’ 문구를 ‘50% 이상’으로 바꾸며 시장을 열광하게 했다. 주주환원 기준의 상단을 ‘바닥’으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50%’라는 기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존 주주환원 정책 상향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것. 게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전자는 시장이 원하는 만큼 자사주 소각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기업이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실시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이 자동 상승한다. 그런데 두 회사의 합산 지분율 10% 이상이 되면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금산법이 있다. 승인을 받지 않는 이상 생명과 화재는 초과분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 작년 말 기준 삼성생명(8.51%) 삼성화재(1.49%) 지분율 합계는 거의 10%로 턱밑까지 차 오른 상태다. 즉 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하려면, 생명과 화재가 반드시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에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걸려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극히 낮은 편이며 그룹 계열사 지분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생명, 화재의 매도분만큼 자사주 소각을 하면, 생명과 화재의 주식 수는 줄어들어도 10%라는 지분율 자체는 유지할 수 있다.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은 감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각을 거듭할수록 생명과 화재를 제외한 총수 일가 지분율은 미미하지만 올라간다.

즉 삼성전자가 대규모 소각을 할 때마다 생명과 화재가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된다. 다만 이는 절차적으로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앞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2018년, 2025년, 그리고 올해 3월에도 소각에 대응해 지분을 매각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규모가 차원이 달라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런 복잡한 절차와 제약이 없는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것이 깔끔할 것이다. 3분기 30조원의 현금배당은 이런 복잡한 고민 속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시장이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200조원의 막대한 잉여현금흐름을 가진 삼성전자가 보여줄 효율적 자본배분이었다.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자본배분 

‘자본배분’이라는 단어는 한국 증시에서 아직도 생소한 단어다. 자본배분은 기업이 가진 자본을 어디에 얼마나 투입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특히 기업이 사업을 통해 번 현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자본배분의 핵심이다.

우리는 한 기업의 CEO가 경영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CEO로 성공하려면 두 가지를 잘 해야 한다. 첫 번째는 효율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 결과로 유입된 현금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바로 자본배분이다.

이 개념은 과거 한국 증시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수의 한국 상장기업은 초과이익에서 발생한 현금을 회사 내부에 대규모로 쌓아놓기만 할 뿐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 가만히 유보된 현금은 대주주의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한 윌리엄 손다이크는 ‘현금의 재발견(The Outsiders)’에서 주식시장에 존재하는 최강의 기업은 모두 자본배분에 강한 기업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책을 국내 자본시장에서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은 VIP자산운용 김민국 대표이며, 이런 자본배분의 원리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이해하고 앞장선 기업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메리츠금융지주다.

‘현금의 재발견’에 따르면 CEO가 회사에 남은 돈, 자본을 사용하는 데는 크게 5가지 방식이 있다. 1)기존 사업 투자 2)다른 사업 인수 3)배당금 지급 4)부채 상환 5)자사주 매입(바이백, 단순 자사주 매수가 아닌 소각을 전제한 개념)이다.

손다이크는 “장기적으로 주주의 이익은 CEO가 이 다섯 가지 도구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경영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잉여현금을 어디에 써야 주주의 돈이 가장 많이 불어나는가?”

삼성전자는 사상 최고의 이익을 벌고 있고 올해 200조원 넘는 돈이 남을 것이다. 이 돈을 둘러싼 자본배분이 향후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좌우할 수도 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의 차이 

배당은 회사의 현금을 주주에게 옮기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은 주식 수를 줄여 기존 주주의 몫을 키우는 것이다.

즉 배당은 회사 측에서 “이 돈을 회사에서 굴리지 않겠습니다. 가져가세요”라며 현금을 주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은 “일부 주식을 현금으로 태워 없애겠습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당신의 지분율은 더 커집니다”라는 뜻이다.

장기 투자자에겐 배당보다 바이백, 자사주 소각이 훨씬 매력적이다. 10년 동안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율이 계속 증가하는 효과가 있으며, 1주가 차지하는 이익의 몫이 늘어난다.

애플은 아이폰을 팔고 남은 대규모 이익을 오랫동안 바이백했다. 애플의 주식수는 2013년 약 260억주 수준이었는데 2025년에는 151억주까지 감소할 정도로 끝없이 주식을 태웠다. 자사주 소각에 비례해 애플 주주들의 소유권은 계속 늘어났다.

버핏은 2021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애플 주식을 추가 매입하지 않았는데도 바이백으로 애플 지분율이 계속 증가했다고 밝혔다. 물론 애플의 이같은 끝없는 바이백은 버핏이 애플을 좋아했던 핵심 이유다.

삼성전자 주주들이 이제 진짜로 원하는 것은 “당장 현금배당 얼마 줄래”가 아닌 것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전 세계 주주의 질문은 “삼성전자 경영진은 막대한 FCF(잉여현금흐름)를 어떻게 배분해야 삼성전자 주식 1주의 가치가 가장 커질지 현명하게 의사결정하고 있는가?”다.

시장은 결국 지금 ‘삼성전자가 미국식 자본배분을 시작할 수 있는가’를 매의 눈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자사주 소각은 주가가 비쌀 때는 정답은 아니다. 정확히는 주가가 쌀 때 매입해 태워야 한다. 버핏도 ‘회사의 내재가치보다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매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소각을 둘러싼 삼성의 복잡한 셈법 

삼성전자는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다. 생명과 화재가 주식을 매도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비용이 크다. 자사주 소각 규모가 크면 생명과 화재도 대규모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시장 충격과 거래비용 등이 발생한다. 생명과 화재는 보험회사이며, 각각의 주주 및 보험계약자들의 이해관계도 걸린다.

자사주 소각은 이렇게 문제가 복잡하지만, 현금배당을 선택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전자 주주들은 현금을 받고, 생명과 화재 역시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에 따라 막대한 배당금을 받는다. 생명과 화재가 전자 주식을 처분할 필요도 없다.

삼성전자의 사례를 두고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이 경우는 삼성전자 일반 주주에게 가장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 삼성그룹 전체에 가장 편리한 자본배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아직 삼성전자가 남아있는 60~80조원의 주주환원 방식을 결정하지 않았기에 결론을 내리기엔 좀 이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약 30조원을 현금배당하고, 나머지 60~80조원의 환원 방식은 2027년 1월 이사회에서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가운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문제들 때문에 현금배당이 좀더 우세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200조원, 삼성전자에게 남은 자본배분의 숙제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89.5조원의 영업이익으로 글로벌 테크기업 최정상에 도달했다.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제 “돈을 얼마나 잘 버냐”에서 “그럼 벌어들인 돈은 얼마나 잘 배분하냐”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에 주주환원하기로 한 삼성전자 FCF의 50%는 90조~110조원이다. 주주에게 준다고 밝힌 50% 외에 50%가 더 남아있다. 경영진이 배분할 자본은 200조원 안팎에 달한다는 얘기다. 주주에게 약속한 100조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회사에 남겨둘 100조원을 어떻게 투자할지, 모두 자본배분의 문제다.

삼성전자의 2024~2026년 주주환원 정책은 올해 끝난다. 내년 1월 이사회에서는 남은 60조~80조원의 환원 방식과 함께 다음 3년의 주주환원 정책도 결정해야 한다. 그때 50%라는 숫자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상단을 열어젖힐 것인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내년 1월, 삼성전자는 어떤 자본배분 정책을 펼 것인가.

삼성전자는 이제 돈을 잘 버는 능력을 넘어, 얼마나 잘 쓰는지 증명해야 하는 회사가 됐다.

자 200조원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삼성전자의 선택을 기다려본다.


*윌리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 이 책 제목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원제는 The Outsiders: Eight Unconventional CEOs and Their Radically Rational Blueprint for Success로, 직역하면 ‘아웃사이더들: 관습을 벗어난 8명의 CEO와 그들의 지극히 합리적인 성공 설계도’다.

책의 핵심은 기업이 잉여현금을 어디에, 얼마만큼 배분해야 주당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 사례들이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은 ‘자본 배분가(capital allocator)’이다. 한국판 제목만 보면 이 책이 현금흐름이나 재무관리에 관한 책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자본배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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