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으로 파이어(경제적 자립과 조기 은퇴)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입 모아 “10억원으로 뭘 해요, 10억원은 부족하다”고 쉽게 말한다. 10억원이라는 금액은 순자산 기준 대한민국 상위 11.8%에 해당되는 규모다. 88.2%의 가구는 순자산이 10억원에 미달하는 셈이다. 열에 아홉 가구가 도달하지 못한 금액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부족하다’고 말한다.
물론 10억원이라는 자산의 성격과 10억원을 소유한 연령대에 따라 논의는 달라진다. 100% 부동산에 묶인 10억원과 금융자산 10억원, 30세와 50세의 10억원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안전한 노후 대비를 위해 좀더 현실적으로 ‘마흔에 3억원’이라는 수치를 제시해본다. 물론 이 3억원은 금융자산이어야 하며 장기간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한다. 누군가는 ‘고작 3억원으로 노후 대비가 되겠어?’ 반박하겠지만 오늘은 그 반박에 답해보는 날이다.
왜 마흔에 3억원인가? ‘코스트 파이어(Coast FIRE)’의 시작
파이어(FIRE)는 당장 일을 그만둬도 투자 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평생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태다. 코스트 파이어(Coast FIRE)는 일을 계속 하면서 근로소득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대신 노후를 위한 저축(투자금)을 더 적립하지 않고 그대로 운용해도 60세에 자산규모가 은퇴에 필요한 규모에 도달한다.
즉 FIRE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Coast FIRE는 ‘더 이상 노후를 위해 저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마흔에 3억원’이란 수치는 바로 코스트 파이어를 말하는 것이다. 열심히 저축하고 투자해 마흔 쯤 금융자산 3억원을 모은 사람은, 앞으로 추가 적립이 없다고 해도 3억원이 노후를 책임지는 핵심이 된다. 마흔의 3억원은 은퇴 자금이 아니다. 향후 20년 노후를 위해 심어두는 씨앗이다. 3억원을 국민연금과 함께 준비한다면 노후 대비의 기본 골격이 완성된다.
마흔의 3억, 20년 뒤 얼마가 될까
40세, 주식자산 3억원, 60세 은퇴를 가정해보자. 3억원은 절대 인출하지 않고 운용하며 추가 적립도 없다고 가정하자.
전 세계 주식시장의 장기 실질수익률, 즉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수익률은 연 5% 수준이다. 복리의 법칙을 적용하면 3억원은 20년뒤 8억원이 된다.
은퇴자의 표준 공식 ‘4% 인출률’을 적용하면 연 3200만원, 월 265만원 가량이 된다. 4% 인출률은 은퇴 첫해에 포트폴리오의 4%를 인출하고 이후에는 그 첫해 금액을 물가상승률만큼 조정해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은퇴자들은 국민연금이라는 안전망도 가지고 있다. 현재 부부합산 평균 노령연금은 월 116만원 수준으로 265만원과 합산하면 월381만원이다.
그런데 미국 주식에 투자할 경우 예상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미국 지수의 2007년 말부터 2025년 말까지 배당을 포함한 연환산 총수익률은 S&P500이 11.0%, 나스닥 100이 16.0%였다. 나스닥은 2008년 금융위기 폭락기를 포함해도 최근 강세장 덕분에 엄청난 연평균 수익률을 나타냈다. 이같은 수익률이 지속되는 일은 쉽지 않기에 여기에서는 실질수익률을 각각 연 7%, 연 10%로 가정해 적용해보기로 한다.
3억원에 연 7%, 연 10% 수익률을 적용하면 20년 후 3억원은 각각 11억6100만원, 20억 1800만원이 된다.
4% 인출률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면 연 7% 수익률 가정시 월 387만원, 10% 수익률은 월 673만원이라는 계산이 도출된다.
40세에 3억원을 확보하고 더 이상 추가 적립하지 않아도, 그 돈이 실질적으로 연 7%로 성장한다면 60세부터 현재 구매력 기준 월 387만원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연 10%로 성장한다면 무려 월 673만원이 된다.
7% 수익률을 가정한 387만원에 부부 국민연금만 더해도 매달 약 500만원 가량의 현금흐름이 도출된다.

물론 10% 수익률 월 673만원은 다소 공격적인 가정이다. 나스닥이 최근 18년간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한 건 사실이지만 계속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또 과세 방식에 따라 향후 실수령액은 달라질 수 있다. 세금은 투자계좌의 유형과 매매차익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고 국민연금·개인연금까지 합치면 각각 과세방식이 또 달라져 일단 세금 논의는 제외했다.
마흔에 3억 모으면 노후 대비 끝? 문제는 ‘주거’
“한국에서 마흔에 3억원 모으면 노후대비 끝”이라고 말하기엔 심각한 다른 문제가 있다. 3억원으로 코스트 파이어를 하려면 ‘3억원을 인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마흔이면 가정을 이뤘든, 이루지 않았든 주택 마련에 대한 필요가 커지는 시기다.
보통은 열심히 모은 금융자산을 주택 구매자금으로 모두 넣게 된다. 서울의 경우 대출규제가 심하므로 상당한 자기자본을 투자해야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
나도 지난 2018년 집을 살 당시 갑자기 LTV 40% 규제가 적용되며, 자기자본으로 아파트값의 60% 이상을 마련해야 했다. 그 때까지 열심히 모은 주식을 거의 대부분 매도해야 했고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던 주식도 어쩔 수 없이 손절매 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집 값의 68%를 현금으로 투입했다.
지금은 40세에 금융자산 3억원을 열심히 만들었어도, 서울 아파트 중간값인 10억짜리 집을 사려면 자기자본은 최소 4억원 이상 필요한 상황이다. 대출이 최대한도까지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10억원 집에 자기자본은 대략 5억원 이상 필요할 것이다.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40세에게 3억원의 종잣돈은 은퇴 자산이 아니라 주택 자금으로 녹아버릴 가능성이 높다. 자가를 매수하든, 전세자금으로 투입되든 이 돈은 은퇴 자산으로 굴릴 수 없게 된다.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거비는 어느 나라에서나 30~40대의 투자 여력을 크게 잡아먹는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은 최근 그 문제가 특히 심각해졌다.
다만 모든 사람이 10억원 넘는 집에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주거 형태가 아파트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자가 주택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비용을 치르고 주거를 해결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결국 코스트 파이어 ‘마흔에 3억원’에는 조건이 있는 셈이다. ‘주택구입 자금과 별개로’라는 조건이다. 이렇게 되면 재테크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정말로 60세까지 인출하지 않고 20년을 굴릴 수 있는 3억원이어야 한다.
마흔의 3억으로 ‘현재의 자유’를 산다
‘주택자금과 별개로’ 마흔까지 주식 자산 3억원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평균의 대한민국 가구가 마흔에 노후를 위해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3억원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마흔에 주택자금 외 3억원을 만들어냈다면, 노후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 3억원을 절대 인출하지 않기 위한 장치, 즉 일부는 퇴직연금IRP나 개인연금 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마흔보다 나이가 많다면? 연 7% 수익률을 가정했을 때 45세라면 4.2억원, 50세라면 5.9억원, 55세라면 8.3억원, 60세라면 11.6억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 35세라면 2.1억원이 있으면 된다. 같은 은퇴자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종잣돈은 50세 이후부터 빠르게 커진다.
노후 준비에 중요한 것은 ‘목돈을 달성한 시점’이다. ‘마흔의 3억원’의 핵심은 3억원이 아니라 20년이다.
마흔까지 금융자산 3억원을 확보해 ‘코스트 파이어’가 이뤄지면 그 다음부터는 삶의 선택지가 많이 달라진다.
근로소득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녀교육 여행 취미생활 등 ‘현재의 삶’에 투자할 수 있다. 노후 대비에 대한 저축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소득의 증가로 3억원에 저축을 더할 수 있다면 더 여유 있는 노후도 준비할 수 있다.
결국 ‘마흔에 3억원’은 노후를 위해 가장 어려운 일을 끝낸 돈이다. 1억원보다는 크고, 5억원보다는 작은 돈, 부자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돈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돈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을 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노후를 이야기할 때 딱 은퇴 시점의 숫자만을 이야기한다. ’10억원이면 부족하다’는 말도 아마 지금부터 10억원에서 생활비를 모두 인출해서 쓰는 상황을 생각한 것일 테다.
3040이라면 ‘막연한 10억’보다 ‘코스트 파이어 3억’을 목표로 삼는다면 마음이 더 편안할 것이다. 3억원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니까. 그리고 3억원을 달성하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계속 미루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 자유가 인생의 핵심이다.



이코노미소셜에서 보고 왔어요. 글 다 좋네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