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왜 대물림될까.
강남 아파트가 50억, 100억원을 호가하는 시대지만 서울 변두리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조부모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아들은 신용불량자이고, 그 자녀들은 방임과 방치 속에 심각한 휴대폰 중독 상태로 자라난다.
부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며 가난이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혹자는 “이제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끊겼다”고 한탄할지 모른다. 그런데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단순히 돈을 물려받지 못해서일까.
경제지 기자들은 초년 때 잠시 거치는 사회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부서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나 또한 주변인의 대부분이 중산층이거나 중상층, 그리고 여의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다. 고교-대학 동창 중에도 가난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딱 한 사람, 내 중학교 때 친구만이 어릴 때부터 가난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난해졌다. 이 친구의 삶을 통해 가난한 가정의 모습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난이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습관의 대물림’을 통해 더욱 철저히 상속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목격한다.
‘가난의 습관’이 무엇이길래
미국의 교육자 루비 페인(Ruby K. Payne)은 1995년 도발적인 주장을 내놨다. 빈곤층, 중산층, 부유층은 서로 다른 ‘숨은 규칙(hidden rules)’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숨은 규칙이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그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행동 습관, 즉 ‘당연한 생활양식’을 말한다.
먼저 돈. 빈곤층에게 돈은 즉각 ‘쓰는 것’으로 정의된다. 모두 써버리는 것이다. 중산층에게 돈은 저축하고, 예산을 짜고, 계획하는 것이다. 부유층에게 돈은 보존하고 증식시키는 것이다. 투자하고 물려주고 대를 이어 불려나간다.
시간. 빈곤층의 시간은 현재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 전부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며 감정이나 생존에 근거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 중산층의 시간은 미래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욕구를 참고 견디며 인내한다. 승진, 내 집 마련, 노후 대비를 한다. 부유층의 시간은 놀랍게도 과거에 있다. 가문과 전통, 유산을 중시한다.
교육. 빈곤층은 현실적으로 자녀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즉 알긴 아는데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 중산층에게 교육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고 돈을 벌기 위한 결정적 수단이다. 부유층에게는 인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전통이다.
운명. 빈곤층은 운명을 믿는다. 우연을 운명으로 믿고 미신을 믿는다. 중산층은 선택을 믿는다. 지금의 좋은 선택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부유층은 좋은 운명이 이미 확보된 상황에서 ‘이 지위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고민한다.
페인의 이론은 학계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빈곤의 원인을 구조가 아닌 개인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즉 그의 이론이 빈곤층에 대한 고정관념을 세련되게 포장했다는 비난이다. 일부 비판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인이 지적한 통장 잔고의 상속보다 무서운 ‘습관의 대물림’은 현실에서는 그냥 무시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중산층 부모의 끝없는 잔소리
내 친구는 홀어머니 슬하에 자랐다. 어머니께서는 공장에서 3교대로 일했고 때로는 밤에 일하고 낮에 주무셨다. 학교가 끝난 방과 후 아이들끼리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는 방임이었지만, 나름 부모의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큰 사고 없이 성인이 될 수 있었다.
친구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약속시간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30~40분에서 2시간도 늦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곤 했다. 꿈이 전문대 특정 과에 진학하는 것이었으나 매번 점수가 부족해 미끄러졌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미루기의 선수였다. 경제적 문제가 커지면서 이혼했고, 지금은 수천만원대 빚을 지고 있다. 돈을 더 벌어야 할 상황인데도 생계 대신 취미 생활에 몰두했다. 1년간 일한 직장을 퇴사하며 퇴직금 300여만원을 받았지만 빚 상환보다는 소비에 모두 써버렸다. 자녀가 한 명 있지만 교육에 신경 쓸 상황은 전혀 아니다.
이 친구의 사례를 보면서 성장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 정확히는 ‘부모의 잔소리’가 부재하는 상황이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의 중산층 가정의 저녁 식탁에서 들을 법한 흔한 잔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숙제 먼저 하고 놀아.” “게임은 30분만.” “용돈 받으면 반은 저금해.” “지금 참으면 나중에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밥 다 먹었으면 바로 양치해.” 같은 흔한 것들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너무 듣기 싫은 소리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규칙에 대한 수천 번의 주입식 교육이다.
앞서 글에서 인간의 본능은 “위험을 만나면 도망가는 것”이라고 했다. 애들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나면 문제집을 덮고 도망치고 싶다.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그러나 부모는 가르친다. “힘든 일을 만나면 천천히 해결해보자.” 하기 싫은 일부터 먼저 해치우는 훈련, 당장의 만족을 미래로 지연시키는 훈련, 이런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 씩, 10년 넘게 반복되는 절제와 인내의 훈련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은 스무살 이전까지 이같은 ‘잔소리 훈련’을 수천 수만 번 받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엄마는 허겁지겁 8시에 퇴근해 저녁 준비를 한다. 18평 월셋집은 이미 난장판이다. 아빠는 10시 이후에나 들어온다. 부부는 또 돈 때문에 싸운다. 부모는 불안한 아이들에게 신경을 쏟을 여력이 없다. 피자, 햄버거, 라면이 주식이고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게임과 휴대폰 타임이 무제한 제공된다. 아이들은 새벽 1시가 돼서야 잠이 든다. 어떤 아이는 새벽 3~4시까지 이불 속에 숨어 휴대폰 게임을 하고 학교를 간다.
역설적이게도 이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란다. 그러나 이 자유는 선물이 아니라 결손이다. 절제를 배울 기회의 결손, 참아본 경험의 결손. “지금 참으면 나중에 좋다”는 명제를 몸으로 검증해본 횟수의 결손.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성실과 인내, 절제를 배우지 못한 채-물려받지 못한 채 그렇게 어른이 된다.
마시멜로 실험의 숨겨진 교훈
1970년대 스탠퍼드의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눈앞의 마시멜로를 15분 참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했을 때, 참아낸 아이들이 훗날 더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이 실험은 “참을성 있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일종의 타고난 기질이 성공을 보증한다는 증거로 쓰였다.
그런데 후속 연구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2018년 대규모 재현 연구에서 마시멜로를 참는 능력의 상당 부분이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가정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2013년 로체스터 대학의 실험이다. 실험 전 어른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 그룹의 아이들은 평균 12분을 기다렸다. 어른이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본 그룹은 3분 만에 마시멜로를 먹었다.
이것은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다. 합리성의 문제다. 어른이 약속을 지키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기다림을 지키면 보상받았다. 그러나 어른이 먼저 약속을 어기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는 눈앞의 욕구를 즉시 충족시키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 된다. 슬프게도 아이가 미래를 믿지 않는 건, 그 아이의 미래가 자주 배신 당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에 따로 사는 부모가 전화로 싸우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꼈다. 어렸던 그의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에서 눈을 감는 것이었다. ‘문제를 만나면 일단 회피하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을 때도 같은 습관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회피만이 인생에서 배운 유일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주 복권을 샀다. 점이나 타로를 즐겨 보러 다니기도 했으며 취미 생활에 돈을 썼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가 유일하게 다니는 학원의 원비는 밀렸다.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카카오뱅크 계좌 잔고는 딱 1만원이었다.
빈곤층 아이들 중 일부는 이렇게 어른이 된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 참는 힘-‘자제력’이 없는 채로,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해내는 힘-‘인내심’이 없는 채로. 이 두 가지는 각각 쾌락과 충동에 대한 브레이크이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참고 견뎌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인생의 액셀러레이터다.
그리고 브레이크도 액셀도 없이, 빈곤층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가난한 환경을 단번에 극복하겠다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시장에 또는 코인시장에 입문하게 된다.
빈손으로 주식시장에 입장하다
주식시장은 무서운 곳이다. 그리고 워런 버핏이 강조했듯 ‘인내심 없는 자의 돈을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로 이전하는 곳’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참고 견디는 노력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빈곤층 아이들이 대부분 배우지 못한, 배울 수 없었던 바로 그 덕목이 핵심인 곳. 시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는 결국 ‘절제와 인내’였다. 같은 논리로 투자에 실패하는 확실한 덕목은 ‘조급함과 과욕’이다.
폭락장이 벌어지면 본능이 외친다. “위험하니 주식을 다 팔고 떠나라!” 그러나 거꾸로 행동해야 돈을 번다.
투자에 성공하는 비결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 싸게 사려면 폭락장의 공포를 이겨내야 하고 같은 논리로 폭등장에서 비싸게 사면 안된다. 그러나 자제력이 부족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본능에 충실하게 거꾸로 한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판다’.
그래서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청년이 주식시장에 들어올 때면 이중의 핸디캡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먼저 투자금(시드머니)이 작다. 원금은 작은데 욕망은 크기에 높은 수익률에 이끌린다. 높은 수익률은 높은 위험을 부른다. 2배, 3배 레버리지와 선물 옵션 투자가 그를 유혹한다.
자제력과 인내심이 없는 그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 기다릴 줄 모르기에 잦은 매매를 하며 손실을 누적해간다.
재무학자 알록 쿠마르는 ‘누가 주식시장에서 도박을 하는가’ 논문에서 저소득층일수록 복권형 주식에 끌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저소득층은 확률은 매우 낮지만 대박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종목에 몰렸고, 그만큼 수익률도 낮았다.
가난한 투자자가 도박에 가까운 매매를 하는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의 어린 시절이 “기다림은 배신당한다”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부모도 조부모도 “한 방이 아니면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으로 복권을 샀고, 빈곤층의 자녀들도 똑같이 주식시장에서조차 복권을 산다.
가난은 이렇게 대물림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난해진다. 가난 그 자체가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 발휘된 인간의 ‘생존 전략’이 자녀에게 상속된다. 즉각적인 소비를 통한 만족, 미래에 대한 불신과 계획 부재, 위험 회피성향은 자본 시장에서 모두 비싼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을까
100만부가 팔린 70대 자수성가 부자의 조언을 담은 ‘세이노의 가르침’에는 가난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챕터가 있다. 그는 가난이 반드시 사회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을 고용해본 그는 가난이 단순히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빈곤층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부모의 빈곤층 문화를 학습하면서 자연스럽게 가난해진다는 주장을 편다. 국가가 제 아무리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도 부모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까.
아니다. 나는 주식시장에서 흙수저 출신으로 100억원 이상의 부자가 된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주식시장은 여전히 인생 역전의 기회가 있는 곳이 맞다.
세이노는 말한다. 가난에서 탈출해 부자가 된 사람이 그 비결을 아는 법이고,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니 죽도록 공부하고 노력하라고. 무료 EBS 방송 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선생님을 붙잡고 늘어지라고. 부모가 이혼을 했건, 집구석에 소주병이 난무하건, 한쪽에서 통곡 소리만 들리건 말건 죽도록 공부만 하라는 것이다. 정말 꼰대 같은 얘기지만 “죽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세이노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공부 안 하고 이미 성인이 됐다면? 더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남들이 유년기 내내 수만 번의 반복으로 힘겹게 해낸 훈련을, 성인이 된 뒤에 자기 돈과 자기 시간을 들여 스스로에게 시켜서 해야한다. 이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뛰어오르기 위해선, 중산층처럼 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중산층에게 돈은 ‘저축하고, 예산을 짜고, 계획하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도 좋고, 쿠팡 물류센터나 택시, 배달업도 좋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있으니 죽어라 일한 뒤 노동으로 저축해 1억원을 모아보라고.
1억원은 사회에 갓 진출한 대기업 회사원도 모으기 쉬운 액수가 아니다. 월급에서 매달 일정액을 떼어 내 몇 년을 쌓아야 한다. 그 돈을 깨서 쓰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유년기에 부재한 절제와 인내의 훈련이 압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재테크 전문가들이 죄다 일단 시드머니를 노동소득으로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1억원은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다. 5000만원도 좋다. 그 돈을 모으는 과정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기다림은 배신당한다’는 메시지를 ‘기다림은 보상받는다’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은 함부로 쓸 수 없다. 부모님의 증여로 받은 1억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돈이다. 자기 손으로 한 푼씩 몇 년간 모은 그 돈을 주식시장에서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까?
가난의 고리를 끊어낼 힘
이 글은 비난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이나 낙인을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비록 자라난 환경은 열악했으나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빈곤층이 중산층이 되는 과정에서는 자기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스스로 역전하는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난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난의 뿌리를 물려주지 않는 부모는 있었다. 과거에는 어떻게든 자식만큼은 제대로 키워낸 집이 많았다. 반면 부유하지만 제대로 된 자제력과 인내심을 물려주지 못한 부모도 있다. 밴더빌트 가문처럼 수천억원대 자산을 3대 만에 거의 다 날려버린 재벌가도 있지 않던가. 대물림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습관’이기 때문이다.
꿩은 천적을 만나면 수풀에 머리를 파묻는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지만, 어린 시절 감당할 수 없는 불행 앞에 그저 회피로만 대응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현실 앞에 눈 감는 일은 더 이상 나의 불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부모에서 부모로, 그리고 그 자식에게로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어른이라면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달아나지 않는 것이다.
가난은 돈보다 습관으로 대물림된다. 그런데 습관은 바꿀 수 있다. 그렇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