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에서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시장경제를 배울까.
‘교실 경제[classroom economy] 체험’
미국 한 초등학교 4학년 2개반에서는 ‘교실 경제’ 체험을 약 5개월에 걸쳐 진행한다. 장난감 종이 달러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고 교환하며 실제 경제 원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매일 5달러가 급여처럼 지급된다. 한 주간 25달러, 한 달에 약 100달러를 급여처럼 받는 셈이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학급 규칙을 어길 경우 약 2~3달러, 많게는 5달러 상당의 벌금을 내야 한다.
매주 금요일에 마켓이 열린다. 마켓에서는 학부모들에게 기증 받은 다양한 물품을 종이 달러로 구매할 수 있다. 마켓에 나온 물건 중에는 20달러, 30달러로 1~2주만 돈을 모아도 구매할 수 있는 작은 장난감도 있지만 200달러로 책정된 큰 레고 세트 등 상당히 장기간 돈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큰 기대에 부푼 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돈을 어떤 전략으로 모으고 어떤 물건을 살 것인가.
마침내 가상화폐 시즌이 막 올랐고 정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크게 네 그룹으로 나눠졌다.
1번 그룹.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그룹. 2~3명의 남자아이, 여자아이로 구성된 각각의 그룹은 돈을 쓰지 않고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심지어 교실 바닥에서 주운 연필이나 간식, 소지품을 팔면서 선생님에게서 수동적으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아 나갔다.
2번 그룹. 적당히 돈을 소비하고 버는 그룹. 2번 그룹은 일단 마켓이 열리면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한다. 2번 그룹의 A라는 남자아이는 마켓에 나온 카피바라 인형을 30달러에 구매했다. 그것을 충분히 갖고 논 뒤, 1주일 뒤 A는 B라는 여자아이에게 카피바라 인형을 50달러에 재판매한다. B는 다시 2주일 뒤 카피바라 인형을 C에게 70달러에 되팔았다. 갖고 싶은 상품을 구매하지만 재판매로 다시 돈을 버는 부류다.
1,2번 그룹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분포됐다.
3번 그룹. 보유 현금이 0달러인 아이들. 지급된 종이 달러를 모두 써버려서 늘 잔고가 0달러인 아이들. 이 아이들은 매일 5달러를 받으면 친구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나 연필 등을 구매하기 위해 가진 돈을 즉시 소비했다. 잔고는 늘 0달러였다.
4번 그룹. 잔고가 마이너스인 그룹. 5달러를 받았는데 숙제를 하지 않고 학급의 규칙도 어기면서 벌금이 너무 늘어나 사실상 빚을 진 그룹이다. 내일 5달러를 받으면 갚기로 약속한 경우로 1~2명의 아이만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시장경제 체험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금요일 마켓 외에도 평소에 자기들이 가진 물건을 종이 달러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연필, 지우개 등 자잘한 학용품, 젤리빈, 사탕과 같은 간식 등 소소한 물건이 1~2달러 소액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70달러에 카피바라 인형을 구매한 C에게서, 80달러를 주고 카피바라 인형을 재매수한 뒤 마켓에 내놓았다. 처음에 30달러였던 카피바라는 약 50일 뒤 100달러 가격에 마켓에 재등장했다.
1번 그룹은 소비욕구를 억제하는 돈 모으기를 좋아하는 ‘경제적 인간’에 해당된다. 이들은 급여 저축과 사업 소득이 결합되면서 결과적으로 근로소득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축적하게 된다. 1번 그룹 아이들은 장난감 금고에 모은 돈을 보관했는데, 심지어 다른 그룹 아이가 금고를 구매하고 싶어하자 이를 또 100달러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즉 돈 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1번 그룹 아이 중에는 부를 과시하듯 1달러를 수 십 장 공중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돈을 줍는다. “나는 돈을 길에 뿌릴 정도로 부유하다” 1번 그룹은 수전노처럼 돈을 모으지만, 한편으로 부를 과시하는 행동에는 돈을 아낌없이 썼다.
2번 그룹은 자본주의의 적극적인 소비자들이자 주류 플레이어다. 이들의 소비욕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동력이다.
3,4번 그룹은 아이들은 2~3명이 불과했다.
이들이 거래한 카피바라 인형의 가격 변화는 ‘자산 버블의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인형이 원래 얼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다음 사람은 더 비싸게 샀다. 적극적으로 소비한 뒤 인형을 되판다. 즉 리셀(resale)로 가치를 다시 창출하면서 소비를 소득으로 바꾼다. 적극적인 소비와 재판매가 자본주의의 동력(소비)이 된다.
특히 아이들에게 달러가 지급되면서 돈이 더 많이 풀릴수록 카피바라 가격이 오른다. 구매력의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른다. 아이들은 문자가 아닌 직관으로 인플레이션 개념을 배운다.
내가 놀란 점은 담임 선생님이 전체적인 룰을 정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거래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정확히 자유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다.
가끔은 선생님이 학생들 거래에 개입할 때가 있었는데, 사기 거래가 발생하는 경우다. 껌을 10개 10달러에 판매했는데 9개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면, 선생님은 1달러를 돌려주라고 명령한다. 즉 불법 행위가 있을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개입한 것이다.
종이 달러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데도, 이 가상의 화폐 축적은 실제 부처럼 작용했다. 현실에서의 화폐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이 돈을 ‘진짜 돈’처럼 서로 사용하기로 신뢰를 부여한 것이다. 학기 말에 시장경제 체험이 끝나면 이 돈을 휴지 조각이 되지만 이미 화폐로서의 권위를 획득했고 아이들은 종이 달러에 열광했다.
불과 두 세 달 만에 빈부 격차가 생겼고, 돈은 권력이 됐다. 작은 교실 안에 재현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교실 경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6월이 되면 모든 돈을 휴지 조각이 될 것이다. 1번 그룹이 축적한 수백달러도, 4번 그룹의 빚도 모두 사라진다. 선생님은 마지막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실까. 그리고 아이들은 무엇을 기억할까.
(단 이런 형태의 수업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학부모들의 다양한 민원이 쏟아질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담임 교사에게 수업에 대해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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