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발언이 화제다. 인공지능(AI) 시대 기업의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청와대 측은 “청와대 논의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지위를 고려할 때 그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다.
우연인지 때 맞춰 파죽지세로 오르던 반도체 3인방(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마치 시장에서는 AI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시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에서 나온 이 흥미로운 발언과 관련해 한 미국 언론이 재미있는 칼럼을 썼다.
미국의 투자 미디어 모틀리 풀(The Motley Fool)은 ‘마이크론 주가가 방금 하락한 이유’에서 대한민국 청와대 정책실장 발언을 재치있게 다뤘다. 다음은 칼럼 내용을 번역, 정리 및 해설한 것이다.
‘마이크론 주가가 방금 하락한 이유’
-AI 초과이익에 눈독 들인 정부, AI라는 황금거위를 세금으로 잡아먹을까?
“저는 정부에서 나왔습니다. 도와드리려구요.(‘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 이는 레이건 시대 유행했던 농담이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아홉 단어가 이것이라며,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풍자하며 말했다.
요즘 이런 농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AI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려는 각국 정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마이크론 주가는 이런 소식에 반응하며 하락 중이다. 정부가 AI라는 황금거위를 죽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코리아헤럴드 보도에 따르면 김용범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AI 기업의 초과이익을 ‘국민배당’ 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AI 시대의 초과이익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물론 이건 페이스북 포스팅일 뿐이다. 공식 정책은 아니다. 한국 내에서 비판도 나왔다. 반대론자들은 이 제안을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이재명 대통령에게 김용범을 ‘즉시 해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리스크를 부각시킨다. 마이크론이 걱정해야 할 건 경쟁사만이 아닌 것이다. 이제 그 이익의 일부를 원하는 각국 정부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 마이크론의 리스크는 낮아 보인다. 마이크론은 미국 회사이고 한국에서 칩을 제조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건 한국에서 발생한 이 아이디어가 마이크론이 실제로 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도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나 심지어 미국까지도.
비슷한 사건은 전에도 있었다. 비트코인 수익이 치솟을 때 암호화폐 과세 논의가 불거졌던 일이다. AI 수익과 마이크론은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
‘모틀리 풀(The Motley Fool)’은 1993년 설립된 미국의 투자 미디어다. 장기 가치투자 철학을 기반으로 한 주식 분석과 유료 구독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독특한 구조의 매체다. ‘돈의 심리학’ 저자인 모건 하우절이 오랫동안 모틀리 풀에서 칼럼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틀리 풀의 시황 기사는 진지한 분석이 아닌 조회수를 겨냥한 단편적 분석이 많다. 이번 기사도 진지하게 썼다기보다는 한국의 AI 초과이익 과세 논의를 흥미롭게 풀어낸 것이다. 미국의 매체가 한국의 정치적 사건을 주목해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모틀리 풀 칼럼은 자세히 읽어보면 김용범 실장의 글을 한국 정부가 기존 법인세 외에 추가적인 과세를 시도하려 한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이크론을 필두로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조정이 시작됐다.
대통령실 발언도 조금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하락의 실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가장 먼저 반도체 업종 자체의 조정. SK하이닉스가 120만원대에서 190만원대로 숨가쁘게 오르는데 보름도 걸리지 않았다. 가파른 주가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이 나왔다고 본다. 미국 SOX(반도체 지수)도 이미 연초대비 60% 상승했고 마이크론도 한 때 8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최근 메모리 주가 상승이 뜨거웠다.
또 4월 미국 CPI(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대비 3.8% 오르며 시장 예상치였던 3.7%를 웃돌았다. 유가 급등 영향이 컸고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며 시장의 위험 회피 성향을 부추겼다.
그럼 한국 비서실장 발언은?
모틀리 풀이 칼럼에서 재치있게 풀어냈지만 한국 대통령실 비서실장 발언이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 주가를 직접 강타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주가 조정 시점이 가까운 상황에서 나온 좋지 않은 소식이라, 매도의 근거 중 하나로 거론됐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정치 리스크가 미국 투자자들의 레이더망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AI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적지 않다는 뜻이면서, 글로벌 증시 플레이어들이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까지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은, 정작 청와대는 선을 그었지만 AI 시대의 초과이익 배분 논쟁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 옹호 입장에서는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만든 이익을 배분한다는 것은 ‘리스크는 민간이 졌는데 과실을 정부가 가져간다’는 반발을 부르게 된다.
반면 재분배와 복지국가를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AI가 만든 이익이 기업이나 자본가에게만 집중되는 것은 부의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으니, 이는 사회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AI의 출현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 변화와 관련된 논란이다. 새로운 시대에 창출되는 부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 역시 부의 권위적인 배분을 둘러싼 새로운 정치적 논쟁의 등장이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 플레이어들은 기술 경쟁과 수요 외에도 AI를 둘러싼 정치와 정책 문제까지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AI가 만든 부는 누구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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