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매일 아침 맥도날드에서 소시지 패티를 사 먹는 걸로 유명했다. 하루 칼로리의 4분의 1은 코카콜라에서 나온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찰리 멍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했고 땅콩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특별한 운동은 안 했다.
그런데 버핏은 올해 95세를 맞았다. 멍거는 99세까지 살았다. 현대의 건강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장수다. 참고로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76세다.
식단 관리, 규칙적인 운동, 절제된 생활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장수한 투자자 기록에 남을 것 같다. 혹시 가치투자에 어떤 특별한 장수의 비밀이 있는 걸까.
버핏과 멍거의 장수는 유전일까
버핏의 어머니 레이라 버핏은 92세까지 살았고, 누나 도리스 버핏도 92세까지 살았다. 모계 쪽에 장수 유전자가 확실히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60세에 일찍 사망했다.
버핏은 어머니 쪽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수 연구에서 어머니 수명이 아들의 수명과 상관 관계가 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 유전되는데 이것이 세포 에너지 생산과 노화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멍거는 유전적으로 좀 더 불리했다. 아버지 알프레드 멍거는 66세, 어머니 플로렌스 멍거는 78세 사망했다. 멍거는 아버지보다 33년, 어머니보다 21년을 더 살았다. 멍거의 경우 유전을 뛰어넘는 수명을 보여줬다.
유전은 어느 정도 두 사람의 수명에 영향을 줬겠지만, 둘다 부계 유전자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버핏과 멍거에게는 유전자 복권 이상의 것이 있었다고 본다.
스트레스를 제거한 사람들
만성 스트레스가 수명을 단축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면 면역 체계가 무너지고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지면서 가속노화가 진행된다. 스트레스는 담배보다 더 건강에 해롭다는 말까지 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언제 심해질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갈 때 높아진다. 원하지 않는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을 할 때, 의미 없는 일을 할 때, 타인의 시선, 외부의 기준이 삶을 지배하는 환경이 장기 지속될 때 스트레스는 만성화된다.
스트레스의 관점에서 버핏과 멍거의 삶을 바라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은 본인들이 평가받고, 통제받는 환경을 일찍부터 제거했다.
버핏은 1956년 친척과 지인들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를 출시하며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펀드의 수익률은 좋았고 자금 유입이 이어졌다. 젊은 버핏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1969년 버핏은 갑자기 파트너십을 해산했다. 그는 “시장이 너무 과열됐고, 내 철학에 맞는 종목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의 돈을 모두 돌려줘 버렸다.
이후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서만 자본을 운용했다. 투자자들은 펀드에 가입하는 대신, 버크셔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버핏에게 투자하게 됐다.
블랙록같은 자산운용사 모델이 아니라 상장된 자기자본 기반 투자회사라는 독특한 모델을 정립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도 슈퍼개미 출신으로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자수성가한 사람은 꽤 많다. 하지만 그렇게 자문사나 운용사를 설립해 수백억원대 부자가 된 사람들조차 수익률 관리와 고객 서비스, 대외 평판으로 인해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객은 언제든 환매를 통해 돈을 뺄 수 있다. 수익률이 나쁘면 환매가 들어오고 고객 불만이 제기된다. 현대의 펀드매니저들은 강세장에서는 시장수익률을 이기지 못해서, 하락장에서는 수익률 부진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두 경우 모두 고객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항의한다.
버핏은 그 사업 모델을 바꿔버렸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영구 자본과 보험금, 자회사의 현금 흐름을 굴릴 뿐 고객 자산 계좌를 관리하지 않고, 분기 수익률 경쟁도 없으며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구하는 일도 없다.
이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버핏으로 하여금 수익률에 신경 쓰지 않고 가치주를 선별해 장기투자하는 토대가 됐다. 10년을 기다려 수익을 내는 초장기 투자, 폭락장에서 대규모 자본을 쏟아붓는 행위, 비유동자산의 과감한 투자 및 인수는 모두 버크셔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능해졌다.
1969년 펀드 해산은 단순한 투자전략의 전환이 아닌, 스트레스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진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 전환이었던 것이다.
펀드매니저를 넘어…’자본가’의 탄생
노동과 근면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와 달리, 미국은 오래전부터 ‘자본을 소유한 사람’을 사회 최상단의 성공 모델로 여겨왔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구축하면서 본인은 스트레스와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자본가는 열정적으로 일한다. 하지만 자본가의 일이란 본인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일이 아니라 거의 ‘놀이’처럼 하는 것이다.
버핏의 직함이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CEO였던 이유는, 그는 남에게 돈을 받아 굴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인이면서 코카콜라, 애플, 가이코의 지분을 소유한 사람, ‘자본가’이다.
말하자면 버핏을 주식시장의 건물주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 건물주보다 사정이 훨씬 좋다. 건물주는 세입자와 건물 관리, 세금 등을 관리하느라 쉽지 않지만 버핏은 그런 잡일 대신 즐겁게 신문을 읽고 기업 분석을 할 뿐이다.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건물 위에 앉아서 쉬는데, 재산이 복리로 계속 불어나고 있다.
버핏은 아침에 일어나 오마하의 작은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는다.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패티와 코카콜라를 사먹는다. 돌아와서 연차 보고서를 읽는다. 이 모든 일을 큰 힘들이지 않고, 평범한 일상처럼 즐기면서 한다.
이것이 버핏과 다른 억만장자 CEO의 차이점이다. 아무리 한 회사의 오너라도 외부의 평가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버핏과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스템을 통해 외부의 판단 기준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들의 성과는 그들 스스로만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외부의 평가기준(S&P 500)도 이겼다. 1965년~2024년까지 버크셔의 연복리 수익률은 19.9%로 S&P 500(연 복리 10.4%)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멍거의 역발상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
멍거의 핵심 철학은 역발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패할까?”를 먼저 묻곤 했다. 실패하는 방법을 파악한 뒤 그것을 피하면 성공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논리다.
멍거는 투자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지보다 어떤 주식이 망하는지를 더 깊이 파헤쳤다. 나쁜 경영자, 나쁜 인센티브 구조, 나쁜 산업, 나쁜 것들을 제거한 뒤 남은 기업 중에서 투자할 만한 옥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버핏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투자를 잘하는 이유는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멍청한 짓을 안 해서라고.
두 사람은 비슷하게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보다, 무엇을 안 해야 행복한 지에 집중했다. 어떤 사람을 사귈 지보다 어떤 사람을 피할 지를 고민한 것이다.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Avoid crazy at all costs. Crazy is way more common than you think. It’s easy to slip into crazy. Just avoid it, avoid it, avoid it.”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친 짓은 피하라. 광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다. 사람은 아주 쉽게 광기에 빠져든다. 그냥 피해라, 피해라, 피해라. “)
두 사람의 투자 철학은 인생을 사는 태도와 같았다. 삶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빼버리는 것이다. 만성 스트레스와 싫어하는 일, 싫어하는 사람을 피할 수 있었다.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물론 그 선택의 자유는 경제적 여유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다 이런 시스템을 다 설계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의 트레드밀 밖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람이 세계적인 부자였는데도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버핏은 지금도 1958년 3만 달러에 구입한 오마하의 집에서 살고 있다. 멍거도 수십 년째 같은 집에서 살았다. 다른 부자들처럼 캘리포니아의 해안가에 수영장 딸린 방 20개 짜리 대저택에 살지 않았던 것이다. 전용 섬을 구매하지도 않았고, 두바이식 궁전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그 돈이면 세계 어디서든,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었지만 버핏은 고향에서 소박하게 살았다. 욕망을 절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삶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두 사람 다 “부자가 되기 위해 부자처럼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버핏은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마셨고 멍거는 땅콩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둘은 사치와 욕망의 트레드밀에 처음부터 올라타지 않았다. 욕망의 기준선이 낮았고 소박한 기쁨을 누렸다. 낮은 욕망의 기준선 덕분에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산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돈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겼다.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펀드매니저들의 진짜 성취감과 기쁨은 운용 규모나 높은 연봉에서만 오지 않는다. 그들이 일하면서 진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나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시장에서 인정받는 순간이다. 어떤 기업을 직접 골라내 투자했는데 그 기업의 주가가 제 값을 찾아갈 때의 기쁨 말이다. 큰 돈을 벌었을 때보다도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시장이 증명해줄 때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버핏과 멍거에도 아마도 투자는 그들이 믿는 ‘복리의 마법’을 실현시켜주는 재밌는 게임 같은 것이었으리라. 둘은 평생 ‘돈 쓰는 재미’보다 ‘돈 자라는 재미’에 매료됐던 사람들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결국 두 사람은 ‘마음 가는대로 살기 위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맘대로 산다’는 말은 전통적으로 노동과 근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적 가치관에서 보면 방종이나 무책임의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버핏과 멍거의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뜻은 다르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영역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맘껏 펼치고자 했다.
버핏이 40대에 파트너십을 청산하면서부터는 그의 인생 스트레스 레벨은 크게 낮아졌을 것이다. 이후에 조용히 살던 그가 세계적인 부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0대부터다.
버핏과 멍거는 삶에서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데 탁월했다. 하기 싫은 일, 맞지 않는 사람, 외부 평가 기준까지 하나씩 제거했고 좋아하는 일과 소탈함만을 남겼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먹으면서 95세까지 행복하게 장수하는 비결, 대단한 비밀은 없지만 쉽지도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정반대다. 나이가 들수록 하기 싫은 일은 늘어나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생계를 위해 일한다. 생계를 위해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회사의 평가 기준과 사회적 시선 속에서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점점 누적된다. 그래도 욕망의 추구는 계속된다. 평균에 도달하기 위한 경쟁이 끝없이 이어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보통의 기준’이 너무나 높아서, 그 기준을 충족하려는 끝없는 지위 경쟁과 평가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버핏과 멍거는 아주 일찍부터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다.
결국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은 ‘진짜 자유로운 삶’이다. 금융의 심장 뉴욕이 아닌 네브라스카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 매일 소박하게 소시지 패티와 콜라를 먹으며 신문을 읽는 것. 남들이 보기에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걸 찾아낸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버핏과 멍거는 돈은 복리로 불렸지만, 행복은 소박한 일상에서 찾았다. 특별한 일도 없고 대단한 사치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오래오래 누렸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지켜낸 진짜 소중한 자산이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