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0억원이 잠긴 금고’—이 주식이 오를 수 없는 이유

6e645980 17fa 4910 888f e7df7bd464b5저평가 확실하지만 대주주가 꿈쩍하지 않는 주식, 투자하시겠습니까?

VIP자산운용이 공들여 투자한 대원산업은 기아 카니발 등 자동차에 카시트를 납품하는 회사다.

보유한 순현금은 4100억원이며 시가총액은 2600억원대다. 회사 전체를 시가총액에 매수한다고 가정해도 현금 1500억원이 남는다.

연간 순이익도 700억원씩 벌고 있다. 이런 종목을 ‘저평가 가치주’라고 한다.

PBR(주가순자산비율) 0.44배다. PBR이 1배라는 것은 기업가치가 장부가와 같다는 뜻이다. 0.44 PBR의 대원산업은 회사를 청산할 경우 주주에게 돌아올 돈이 현 주가의 두 배 이상이 된다. 즉 이 회사는 주식시장에서 본래 값어치의 반값도 안되는 주가에 거래되고 있다.

PER(주가수익비율)은 3.4배다. 3.4년치 순이익만 지불하면 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심할 여지 없는 싼 주식인데 이런 회사가 한국에 아주 많다.

대원산업의 저평가에는 이유가 있다. 우연이 아닌 구조적인 이유다.

첫째,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4,100억원의 순현금을 쌓아두고 배당성향(2025년 기준)은 6.5%에 그친다. 배당성향이란 순이익 중 주주에게 돌려주는 비율을 말한다. 주당 배당금은 250원, 배당률 1.77%에 그쳤다.

순이익 700억원에 보유현금 4100억원인데도 배당으로는 50억원만 지급한 것이다. 회사가 벌어들여 내부에 계속 쌓이는 현금이 주주에게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특수관계법인과의 내부거래 문제가 있다. 

오너 일가가 소유한 특수관계법인 옥천산업은 2024년 매출의 81%를 대원산업과 거래에서 올렸다. 또 다른 특수관계법인 대진도 매출의 92%가 대원산업 등 특수관계자와 거래에서 발생했다. 상장사의 이익이 오너 일가의 개인 법인을 통해 이전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형성돼 있다.

이 구조에서 이사회의 독립적인 감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대원산업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그 감시 가능성을 더 줄이는 결정을 내렸다.

셋째, 집중투표제마저 폐지하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가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는 주총에서 주식 100주를 가진 주주는 300표를 받아 한 명에게 집중시킬 수 있다. 최대주주가 63%의 지분을 가진 구조에서도, 소수주주가 힘을 모으면 이사 한 자리 정도는 이사회에 올릴 수 있다. 경영진을 감시할 독립적인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하지만 대원산업은 올해 3월 20일 정기주총에서 이 집중투표제를 폐지하는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최대주주 지분율(62.95%)이 높아 이를 통과시키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가치투자 운용사이자 대원산업 주주(2.99%) VIP자산운용은 이에 앞서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VIP운용은 “대원산업은 대화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소수주주가 이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집중투표제 배제하는 안건까지 상정했다”고 밝혔다.

결과에 이변은 없었다. 집중투표제가 폐지됐다.

싼 주가는 상속세를 낮춘다 

VIP자산운용은 주주서한에서 한 가지 불편한 가설을 제기했다. 대원산업의 저평가가 단순한 방치가 아니라 구조적 유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허재건 회장의 아들 허선호 부사장은 2024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허 부사장의 현 지분율은 3.59%에 불과해, 상속·증여를 통한 지분 승계가 필요하다.

Dd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고질적인 상속세 절감 방식인 ‘주가누르기’다.

한국 상속·증여세는 상장주식의 경우 시가(주가)를 기준으로, 비상장주식은 순손익가치 60%와 순자산가치 40%를 가중평균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VIP운용은 이 두 방식의 차이를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PBR 0.44배 기준 추정 상속세는 약 303억원이다. 대원산업이 비상장사일 경우 PBR 기준 추정 상속세는 775억원이 된다.

즉 대원산업은 상장한 상태로 낮은 주가를 유지한 덕분에 상속세를 약 472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주주환원을 늘리고 지배구조를 개선해 주가가 오르면, 모든 주주에게는 이익이지만 대주주 일가의 상속세 비용이 올라간다.

물론 이는 가설이다. 경영진의 의도를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저평가를 유지할 구조적 유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 유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재평가의 촉매를 찾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원산업은 배당을 안 해서 주주가 손해를 보는 회사가 아니라, 배당을 안 한 덕분에 오너 일가가 수백억원을 절약하는 회사다.

대원산업 같은 기업은 아직도 한국 증시에 너무나 많다. 이들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축이다.

집중투표제마저 폐지함으로써 대원산업은 앞으로 장기간 최대주주의 뜻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저평가는 확실한데, 이런 종목에 출구는 있을까?

VIP자산운용은 10조원을 굴리는 국내 굴지의 가치투자운용사다. 그런 운용사에서 반대의견을 냈지만 회사 측은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P운용 측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특별결의요건에 육박하는 63% 수준의 대주주의 압도적인 지분율 앞에 현실적인 한계를 느끼지만, 고객의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 ”

합리적 시장을 가정한다면 이런 종목은 언젠가 제 값을 찾아 주가가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시대 흐름에 역행해서 집중투표제마저 폐지했다.

대주주 지분율 63%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37%를 보유한 소주주주도 엄연히 주주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소수주주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4100억원의 현금이 쌓여 있는 금고가 있다. 당신은 그 금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금고 주인은 열쇠를 나눠줄 생각이 없고, 당신이 그것을 요구할 방법도 방금 하나 줄었다. 이제 없다.

이런 종목은 ‘출구가 없는’ 전형적인 저평가 K주식이다.

재평가가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승계가 마무리되거나, 상법이 바뀌거나, 금융당국이 저PBR 기업에 압박을 가하거나. 어느 쪽이든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현금은 더 쌓이고, 주주는 계속 기다릴 것이다.

리레이팅의 시간은 올까.

 

※ 이 글은 투자 참고를 위한 개인적 의견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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