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캐피탈과 행동주의 가치투자 ‘컨설타비스트’의 정체

미리캐피탈(Miri Capital Management LLC)은 한국 투자자에게 아직 낯선 이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 사모투자업계의 상징적 PE 스틱인베스트먼트(STIC Investments)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미국의 사모운용사는 왜 굳이 한국에 와서 스몰캡 기업 지분을 늘려갈까. 미리캐피탈은 한국 자산운용사들과 별다른 접점이 없음에도 이들이 내세우는 ‘행동주의 가치투자’는 최근 국내 가치투자 운용사들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해외의 사모펀드가 우호적 행동주의로 한국 주식에 투자를 개시했는데 국내에서도 VIP자산운용이라는 핵심 플레이어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외부 행동주의 자본과 내부 가치투자 자본이 동시에 한국의 저PBR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증시에서 이미 저PBR 혁명의 단초가 시작됐다는 것을 시사하기에 중요하다.

미리캐피탈은 어떤 회사인가

미리캐피탈은 2020년 설립된 부티크 투자운용사다. 링크드인 회사 페이지에는 본사를 메사추세츠 보스턴에 두고 타코마와 포틀랜드에도 거점을 두고 있다고 적혀 있으며, 회사 규모는 2~10명으로 표시된다. 또한 공개적으로 보이는 직원 수는 9명 수준이다. 전통적인 대형 운용사와 비교하면 극도로 작은 조직이다.

SEC에 따르면 미리캐피탈의 2025년초 기준 운용자산(AUM)은 약 5억(약 7000억원) 달러로 이를 재량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미리캐피탈은 스스로를 ‘privately owned investment firm’ 즉 비상장 사모 투자회사라고 소개한다. 투자 대상은 공공시장과 사적시장 모두를 포함하며, 주로 아시아와 이머징 마켓 지역의 기업들에 관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관심 업종은 소프트웨어, 산업·비즈니스 서비스, 금융 플랫폼 등이다. 즉 한국식 의미의 전형적인 바이아웃 사모펀드라기보다 상장주식과 비상장주식에 모두 투자하되 필요하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부티크 투자회사에 가깝다.

미리캐피탈의 핵심 ‘컨설타비스트(Consultavist)’

미리캐피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회사 측이 직접 내세우는 ‘Consultavist’다. 이 접근법은 포트폴리오 기업에 조언, 글로벌 산업 분석, 네트워킹을 제공하면서 경영진과 상호 정렬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업가치와 시장의 인식 모두를 높이려는 방식이다.

이 표현은 꽤 흥미롭다.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는 시장에서 흔히 ‘activist’로 불린다. 그런데 미리캐피탈은 스스로를 정면으로 행동주의라고만 규정하기보다, 컨설팅(consulting)과 행동주의(activist)의 융합 포지션으로 규정한다. 미리캐피탈은 한국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공격적 행동주의가 아니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회사와 협력하고 회사에 컨설팅을 제시하는 ‘consultavist’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미리캐피탈의 스타일이 적대적 경영권 분쟁형 행동주의라기보다, 저평가 기업을 발굴한 뒤 경영진과의 협업·조언·네트워크 제공·자본배치 개선 제안 등을 통해 가치 재평가를 노리는 방식에 가깝다는 뜻이다. 다만 회사가 스스로 내세우는 정체성은 “싸게 사서 기다리는 수동적 가치투자자”와는 분명히 다르다.

미리캐피탈의 컨설타비스트 지향은 한국시장에서 매우 흥미로운데, 이는 행동주의 가치투자를 내세운 VIP자산운용의 포지션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VIP자산운용은 좋은 종목을 매수한 뒤 저평가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우호적 행동주의’ 전략을 펴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김민국 대표는 “우호적 행동주의는 폭력이어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니라 너무 매력적이라 안 하면 손해인 제안을 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우리는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유익한 설계를 권한다”고 말한 적 있다. 실제로 VIP자산운용은 기업에 보내는 30~60페이지에 달하는 주주제안서를 ‘러브레터’라고 부른다. 회사와 주주의 공존, 상생, 더 나아가 성장을 도모하는 행동주의다.

오너와 핵심 인력의 성격

벤자민 그리피스(Benjamin Griffith)로 Miri Capital Management의 창업자 겸 CEO다. 그는 미리캐피탈의 수석 파트너 겸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코네티컷 컬리지를 졸업한 뒤 블룸버그LP에서 커리어를 시작, 2020년 미리캐피탈을 창업했다. 그는 신흥시장·프런티어 마켓·소형 선진국 시장 등 가장 비효율적인 글로벌 증시에 특화된 커리어를 통해 미리캐피탈 고유의 ‘우호적 행동주의(friendly activist)’ 투자 방식을 발전시켰다.

공개 링크드인 정보상 당시 회사 페이지에 노출되던 인물로는 Doug McKenna, Matt Seguin, Dave Fietze, Keitaro Tsujiko 등이 있다. 미리캐피탈 팀은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 투자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여러 국가의 공개시장 기업 경영진과의 관여를 통해 상호 이익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투자대상 기업에 대한 운영 지원 경험도 함께 언급한다. 이는 미리캐피탈이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라기 보다, 필요할 경우 경영진과의 관계 형성과 가치 제고 제안까지 수행하는 팀임을 보여준다.

또 회사는 팀이 미국과 일본 오피스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밝히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별도 법인을 통해 리서치를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이 점은 미리캐피탈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일회성 테마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기반과 조사 체계를 갖춘 채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벤 그리피스 대표를 포함한 이 회사의 리더십은 결국 한국 시장을 단순히 ‘멀고 낯선 시장’이 아니라 장기적 가치투자와 관여[Engagement]형 전략이 통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시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대한 전략적 투자

미리캐피탈의 한국 투자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단연 스틱인베스트먼트다. 미리캐피탈은 수년 전부터 스틱 지분을 매수한 상태에서 도용환 창업회장 측 지분 11.44%를 추가로 인수해 총 약 25%를 확보해 최대주주 지위에 올랐다. 이 거래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전형적 경영권 매매라기보다, 분산된 지분 구조 속에서 핵심 블록을 확보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거래에 더 가깝다.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벤 그리피스 대표는 스틱을 단순한 저평가 종목이 아니라 초기 블랙스톤이나 브룩필드 같은 투자 플랫폼에 비유했다. 이는 미리캐피탈이 스틱을 ‘싸게 거래되는 상장사’ 정도로 본 것이 아니라, 향후 더 큰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국형 대체투자·자본시장 인프라 기업으로 평가했다는 뜻에 가깝다. 특히 그는 스틱이 한국 내 최대 규모의 운용 파트너 그룹을 보유하고 있고 리얼에셋 부문 역시 플랫폼 사업과 투자자 관점에서 모두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스틱 투자는 단순한 밸류주 베팅이 아니라, 플랫폼 가치와 네트워크 가치에 대한 투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미리캐피탈이 스틱 투자 이후 곧바로 ‘딜의 국제화’보다 ‘LP 기반의 국제화’를 우선 과제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LP 국제화란 국내 출자자 중심의 자금조달 구조를 해외 기관투자가까지 넓히는 것을 뜻한다. 즉 미리캐피탈은 스틱이 더 많은 해외 딜을 하는 회사가 되는 것보다 먼저, 더 글로벌한 자금조달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이는 미리캐피탈의 engagement가 단순히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요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운용사의 자본조달 기반, 보상체계, 차세대 리더십 승계, 글로벌 투자자 커뮤니케이션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임을 보여준다.

왜 한국일까?

한국은 보스턴에서 비행기로도 16시간 거리다. 이 먼 거리에서 미리캐피탈은 한국 증시의 비효율적인 시장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원래부터 신흥시장과 소규모 선진시장, 특히 시가총액이 작은 스몰캡 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은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여전히 저평가되고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이다.

한국 주식시장에는 여전히 낮은 PBR(주가순자산비율), 과도한 내부유보, 낮은 주주환원비율, 지배구조 문제, 오너 중심 의사결정 체계 등 저평가 요인이 많은 상황이다. 미리캐피탈같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본배분 효율화, 주주환원 확대 등으로 재평가를 요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다.

특히 한국 중소형주는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정보 접근성이 낮다. 사업보고서와 공시는 한국어 중심이고, 기업 지배구조나 오너의 행동 패턴, 업계 내 평판 같은 정성적 정보는 영어권 운용사에서 접근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형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이런 종목에 투자하지 않는 편이고 이 때문에 미리캐피탈 같은 소규모 운용사에게 기회가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미리캐피탈은 투자 기업에 대한 ‘constructive advice‘ 즉 건설적 조언을 강조하는 컨설타비스트다. 미리캐피탈은 미국의 일부 가치투자 행동주의 펀드, 기업과 대립하기보다는 자본 분배 개선, 비핵심자산 정리, IR(기업설명활동) 강화, 주주환원 확대 같은 의제를 투자회사에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쪽이다. 회사 측은 “우리는 시끄러운 공격자가 아니고 가치제고를 돕는 파트너”라고 설명한다.

국내에서 VIP자산운용이 컨설팅형 가치투자를 지향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 때 미리캐피탈과 같은 미국계 투자자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또 한편으로 이는 한국 시장의 구조적 할인이 개선되는 극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마침내 시작되는 국면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일부 기업들은 지금까지 소수주주를 완전히 무시한 채 폐쇄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며 대주주의 사익만을 추구해왔다.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과, 이들을 설득하려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부상, 앞으로 한국 증시의 변화가 재미있어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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