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이 드러낸 한국의 ‘평등’ 감수성

204f3608 0a4c 4e9f 8607 9eaff907030a얼마 전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에 대해 썼다. 내 요지는 성과급은 넉넉하게 주고, 주가 상승을 누리게 주식도 나눠주자, 단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고정 지급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삼성전자 직원과 대중이 모두 반발했다.

노조의 요구를 비판했다고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까이고, 성과급 넉넉하게 주자고 했다고 일반 대중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먼저 삼성전자 직원 측에 선 사람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올해 삼성전자의 대규모 이익은 직원들의 성과이므로, 우리에게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나눠야 한다.

특히 일부 직원분들은 좀 더 근본적이면서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아래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작성한 댓글 일부이다. 물론 추정일 뿐 아닐 수도 있다.

“한국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점은 양극화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잡지 못하다 보니 노동의 가치가 떨어져 건강한 자본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전체 사회의 이익 배분과 양극화 해소 관점에서 주주보다 노동자의 가치를 우선할 만한 정의의 근거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노동자 중심의 정의를 생각해보자. 금융소득이 아니라 노동소득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노동의 가치는 높아지고 중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갑자기 마르크스가 소환됐다.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노동가치론]에 따르면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창출되고, 따라서 이익은 노동자에게 귀속된다. 글쓴이는 “슈퍼사이클은 결국 노동자의 노력 덕분”이라며 이익 배분의 정당성을 말했다.

특히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만든 가치 중 임금을 초과하는 부분을 자본가가 착취한다고 했다. 삼성이 그렇게 많은 이익을 냈으면 노동자가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상당 부분을 줘야한다[잉여가치론]는 것이다.

그래서 칼 마르스크는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를 벌린다고 했다.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그렇다. 이것은 토마 피케티를 비롯한 현대 진보 경제학에서도 얘기하는 내용이다.

글쓴이께서 칼 마르크스를 알고 얘기하신 건지,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신 건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근거로 성과급을 주장하는지 상세하게 써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삼성전자 같은 기업은 탄생하지 못했다. 초과이익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무너진 공산주의 체제가 증명하듯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를 진짜로 놀라게 한 것은 대중의 생각, 여론이었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뭘 했다고 억대, 수십억원대 성과급을 받느냐, 노동조합의 집회는 집회가 아니라 축제나 마찬가지 아니냐. 다들 강남 아파트 사려고 성과급 달라고 하는 거다. ”

앞서 직원분이 ‘전체 사회의 이익 배분과 양극화 해소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국민 일반 역시 다른 의미의 평등을 외쳤다. 대규모 이익을 나누라는 직원들의 주장과, 너희가 뭔데 우리와 달리 엄청난 성과급을 받느냐는 주장이 모두 ‘평등’이라는 동일한 토대 위에 있었다.

삼성전자 돈 많이 벌었네? 나눠줘(직원).

삼전 직원들 성과급 5억 받는다고? 너희만? 그건 안돼(국민).

겉으로는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같은 세계관[평등]을 공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직원은 이 잣대를 회사에 들이대고, 대중은 같은 논리를 반대 방향에서 삼성 직원들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직원과 국민 모두 분배의 정당성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묻는다.

알고보니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였던 것이다!(농담이다.)

사실 한국은 미국식 시장경제와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중에서 점점 더 유럽 모델로 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제도 변화도 복지를 더 확대하고 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실 삼성 직원들이 성과급을 많이 받는다고 그것이 국민의 손해로 직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평등 감수성은 유독 강하다.

이 평등은 ‘나보다 많이 가진 자에 대한 불편함’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중은 삼성 직원들의 성과급 횡재를 원하지 않는다. 삼성 직원들이 10억 성과급을 받아서 한방에 서울 아파트를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앞서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쓴 “전체 사회의 이익 배분과 양극화 해소 관점에서 주주보다 노동자의 가치를 우선할 만한 정의의 근거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는 말로 돌아가보자.

진짜 중요한 이야기다. 왜냐면 삼성 직원들은 노동 소득 양극화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직원은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양극화 해소 논리를 삼성전자 직원 성과급 옹호에 쓰는 건 역설이다. “삼성전자 다닌다”는 말 자체가 이미 ‘안정적인 직장, 높은 연봉, 복지, 사회적 인정’이라는 요소를 두루 갖춘 노동 시장의 기득권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대중은 성과급 논란을 “이미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져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 성장 둔화와 자산 격차가 커진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다.

기회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성과보다 분배에 민감해진다.

자본주의의 과실은 원하지만 감성은 사회주의라니, 정말 기묘한 형태다.


다시 성과급으로 돌아가 미국식 자본주의 보상안이 좋다고 썼는데,

삼성 직원들은 화를 냈다. 내가 노조의 핵심 요구안에는 찬성하지 않아서다.

대중들도 화를 냈다. 삼성직원에게 수억원대 성과급은 너무 많다는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양쪽에서 얻어터지고 말았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 사람이 누구 편인가”를 먼저 판단하고 그 다음에 내용을 보거나, 내용을 아예 안 보기도 한다.

아이고야, 이런 입장은 늘 외롭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