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ETF를 포트에 깔고, 전략적 가치주에 분산투자합니다. ”
예상치 못한 강세장을 온 몸으로 겪으며 요즘 들어 종종 생각이 나는 것은, 몇 년 전 소천하신 신진오 밸류리더스 회장님 말씀이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당시 나는 재야고수들을 인터뷰하고 있었고 신 회장님을 꼭 만나뵙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를 극구 거절하고 재야에서만 지내셨다. 신영증권과 신영자산운용 인맥, 그의 선후배들을 동원해 결국 신 회장님과 연락이 닿는데 성공했다.
신진오 회장님께서는 당시 “아무리 가치투자라고 해도 시장 위험을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치주 투자라고 하면 저PBR 또는 저PER 종목을 선별해 엉덩이에 깔고 오래오래 투자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본인 또한 대형주를 ETF로 깔고 가치주와 함께 투자한다고 밝혔다. ETF 안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가 편입돼 있으니 지수가 급등하는 강세장이 와도 시장에서 크게 소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레이더처럼 대형주 장세가 오면 대형주를 사고, 중소형주 장세가 오면 중소형주를 사라는 게 아니라, 대형주와 가치주를 둘 다 투자하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사실 당시에는 이 조언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ETF를 포트폴리오 바닥에 깔라고요? 그냥 말씀하시는 대로 받아 적었다.
거역할 수 없는 폭풍 같은 강세장을 온 몸으로 맞고 나니, 이제는 그의 깊은 뜻을 알겠다.
코스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젖힌 2026년 강세장은 반도체를 앞세운 AI 주식의 독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수급 블랙홀이 되어 돈을 빨아들이면서 가치주는 강세장에서 소외되거나,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는 힘겨운 국면이다.
많은 가치주 펀드와 펀드매니저들은 강세장을 만나 하루가 다르게 고생하고 있다. 시장을 이기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절절히 실감하면서. 가치주 투자자들도 수익률이 부진한 포트폴리오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뒤늦게 나 또한 “포트폴리오 20%는 그냥 지수 ETF로 깔 걸” 후회를 했다.
신 회장님의 저서 ‘전략적 가치투자’에서는 두 가지 투자 방법이 소개돼 있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재가치보다 현저히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다. 또 다른 하나는 강세장에서 베타계수가 높은 시총상위 대형주에 투자하는 베타투자 전략이다.
그는 가치투자를 강조하면서도 가치투자에 수반되는 시장 위험을 경계했다. 신 회장은 “흔히 가치투자자들은 숲보다는 나무에 집중하느라 시장의 커다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아예 대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따라서 시장에 발생하는 체계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 베타투자전략 병행이 필요하며, 가치투자전략과 베타투자전략의 이상적 결합을 일컬어 ‘전략적 가치투자’로 정의했다.
다만 베타투자 전략이 성공하려면 ‘강한 상승장세’라는 대전제가 필요하다며, 지수 하락시 매우 큰 손실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즉 강세장에서 일시적으로 또는 가치주와 병행해 구사할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치투자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 보완적으로 우산(베타투자전략)을 쓰자. 즉 우산을 사용하는 워런 버핏이 되자”고 했다.
다만..이제는 그 때 하셨던 말씀의 뜻을 이해했는데,
다시는 여쭤볼 수가 없게 됐다.
신진오 회장님의 필명으로 잘 알려진 ‘밸류타이머’는 ‘핵심 우량주를 보유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진다’는 뜻이다. 그는 좋은 주식이 저렴하면 몰빵하겠지만, 평소에는 저평가된 좋은 기업을 찾기 쉽지 않기에 그런 주식을 찾으면 매수 후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강세장이 온 다음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강세장 이전에 이미 좋은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신영증권에서 주식투자를 총괄했던 그는 2003년 마흔다섯에 홀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재야로 들어가 주식 고수가 됐다.
좋은 주식은 태평성대에는 절대 싼 값에 거래되지 않으니, 위기가 왔을 때 헐값으로 폭락한 주식을 ‘인정사정없이 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때 코스피 350포인트 대폭락장에서 핵심 블루칩 주식을 대량 매집한 뒤 1000포인트 이상에서 매도해 신영증권 수익에 크게 기여한 장본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