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르다 말겠지. “

최근 여의도에서 일하는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작년에 코스피가 숨가쁘게 오를 때 “이러다 또 떨어지겠지”라며 강세장을 믿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에 돈 번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코스피는 지난 20년 넘게 2000~3000을 맴돌았기 때문에 박스권 돌파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랬는데 강세장이 도둑처럼 찾아오고 말았다.
정신 차려보니 SK하이닉스는 100만원, 삼성전자는 20만원을 넘어섰다. 과거에 삼성전자 9만원에 물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 이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투자자의 99%가 수익을 내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매일같이 신고가이고 뉴스에서는 연일 ‘AI 슈퍼사이클’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 강세장에서 제대로 축배를 드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다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주식을 사야할까” 하지만 50% 상승이 아니라 500% 오른 주식이 많은 지금, 이제와서 주식을 매수하기엔 겁이 난다. 이 일을 어쩌면 좋나. 사자니 물릴 거 같고, 안 사자니 배가 너무 아프다.
하락장보다 힘겨운 상승장
하락장은 고통스럽지만 단순하다. 손실을 견디면 된다. 계좌를 열어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강세장은 다르다. 주식을 산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부자가 되는 것 같은데 못 산 사람은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친구가 하루 아침에 1억원 벌었다, 누가 5억원을 벌었다, 하는데 지금이라도 주식을 사야할까? 살까 말까에 대한 갈등은 어느새 선택을 넘어 고통이 되어 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손실보다 기회의 상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돈을 잃어버리는 고통보다, 돈을 벌 기회를 놓치는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인간은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보다 손실에서 2배 이상의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주식투자를 하다 100만원 손실을 내면 인간은 처음에는 고통을 느껴도 곧 합리화를 한다. “어쩔 수 없었어”라며. 하지만 놓친 기회에 대해서 인간은 ‘가능성’을 계속해서 상상한다. 인간의 뇌는 실제 발생한 사건보다 상상 가능한 성공 시나리오를 더 자주, 더 강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실제로는 당시에 가격이 쌌던 삼성전자를 5만원에 풀 매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그 때 삼성전자 1억원 어치 풀매수했다면? 지금쯤 4억이 되었을 것”이라며 과장된 성공을 반복하며 떠올린다.
즉 손실은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지만 기회 상실은 “내 판단이 부족했던 것”이라는 자책한다. 때문에 상승장에서 사람들은 냉정한 계산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강세장에서 그리고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서 ‘FOMO 매수’가 터지는 이유다. 손실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정신적 고통을 피하려는 아이러니한 선택이다.
코스피 지수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오르는 강세장은 ‘놓칠 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매일같이 보여주는 셈이다. FOMO 매수가 불붙으며 시장은 더 뜨거워지고, 코스피는 세이렌처럼 끊임없이 초보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는 다르다” 정말 다를까
증권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대기인원 30명, 대기시간 1시간10분’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강세장은 강세장이다. 지금은 과열일까? 아닐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강세장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증시에 뛰어들 것이다. 예전에 삼성전자 9만원, 10만원에 물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던 것처럼 고점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항상 틀렸다는 말은 월가 3대 격언 중 하나다. 물론 이 말이 항상 틀린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강세장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장기간 지속됐다. 코스피 지수는 사실 2004년~2007년에 4년간 이어졌던 초강세장 이후 약 20여년간 이 정도 강세장이 펼쳐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번 강세장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까? 지금 FOMO에 시달려 지금이라도 주식을 산 사람들이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까?
다만 아직도 강세장을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아직은 강세장이 ‘현재진행형’이다. 강세장은 회의와 의심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모두가 강세장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외치고, 주식을 안 하던 사람들까지 계좌를 만들고 돈 싸들고 증권사 지점을 방문할 때 고점이 올 것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기억해야 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기대하는 수익만큼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0% 수익을 원하면 100% 손실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 FOMO로 성급하게 주식을 산 사람은 안도하기도 하지만 그 주식이 내리면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확신이 없는데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식투자에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만의 원칙인 것 같다. 비싸게 사도 계획한 대로 적당히 수익률을 낸 뒤 매도한 사람, 사지 않았지만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 이런 투자자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